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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세상탐험기] 4. 복숭아 이야기 첫 번째 : 신선의 과일

Prunus persica

by Jill Weisenberger
by Jill Weisenberger

 

내과피가 나무처럼 단단하게 변해 그 안의 종자를 보호하는 열매들을 ‘핵과’라고 하며, 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과일이 복숭아입니다. 중국에서 신선의 과일로 여겨지던 복숭아는 페르시아를 거쳐 그리스와 로마로 전해졌고, 오리엔트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던 유럽인들은 이 과일을 ‘페르시아의 사과’라는 뜻으로 peach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 귀한 과일은 신의 음료 ‘넥타’에서 이름을 따 nectarine이라 하기도 했습니다. 복숭아를 통해 우리는 과일 경작의 기초적인 비밀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프룻티어의 과일세상 탐험기 글 김준기 / 제작지원 cherry

 

불사의 과일로 만든 신의 음료

복숭아는 이미 선사시대부터 경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 원산지는 중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종종 중국에서 오래 전 화석화한 복숭아 씨앗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더운 여름에 달고 즙이 많은 열매를 맺는 복숭아 나무는 또한 꽃이 아주 아름다워, 중국과 한국에서는 관상수이자 과실수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복숭아는 오래 전부터 문헌과 그림에 꾸준히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전형적인 지괴소설 중 하나인 한무고사의 설화가 유명합니다. 곤륜산의 천도는 한 번 먹으면 천 년을 산다하는 귀한 과일로, 주인인 서왕모가 한 무제의 생일에 이 과일을 보냈으나, 전달하던 한 무제의 신하 동방삭이 훔쳐 먹었다는 내용입니다.

괴산 곤륜산과 괴수 서왕모는 중국의 수 많은 토착 전설 중 하나였으나, 독특한 중국 민중의 종교라 할 수 있는 도교 신앙과 함께 특별한 장소와 존재로 각각 거듭납니다. 도교에서 도(道)는 세상 만물의 근본 원리로, 무위(無爲)하고 자연(自然)합니다. 이를 깨우친 사람을 진인이라고 하며, 이 존재가 중국 설화에 등장하는 신선의 정체입니다. 도교는 후에 노자와 장자를 만나 철학적으로 깊어지기도 하지만, 마땅한 창시자 없이 일반 대중 사이에서 퍼졌던 도교는 신선이라는 초인과 도술, 괴이한 이야기들에 더 집중하며 숱한 설화들을 만들어 냅니다. 곤륜산이 신선들의 땅이 되고, 서왕모가 여선이 된 것은 도교 신앙의 영향입니다. 서왕모의 복숭아는 자연스럽게 불사와 장수의 상징으로 연결되었고, 무릉도원 등 신선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워낙 오래된 전설들인지라, 애초에 왜 복숭아였는지에 대해서는 추론만 가능할 뿐입니다. 우선 전설이 형성될 당시 복숭아는 아직 일부 지역에만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곤륜산이 그런 지역 중 하나였을 수도 있으며, 실제로 복숭아의 원산지를 그 근방으로 보는 설이 유력합니다. 특히 현대의 복숭아는 다른 과일에 비해서 비교적 높은 당도와 수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맛도 좋은데다 한 두 개로도 금방 포만감이 느낄 수 있는 복숭아라면, 먹을 것이 많지 않던 과거에 대단한 만족감을 선사했을 것입니다. 다만 더운 여름에 열매를 맺는 복숭아는 워낙 과육이 무르고 약해서, 바로 먹지 않으면 쉽게 벌레가 꼬이고 상하기 일쑤입니다. 유통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복숭아는 상업적으로 다루기 어려워 가격이 높은 편이니, 마땅한 저장기술이 없던 고대에는 더더군다나 쉽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향긋하고 우아한 과일의 향과 달콤함으로 유명하지만 도무지 맛볼 기회가 없는 이 복숭아를, 쉽게 찾을 수 없는 귀한 신선의 과일로 여길 법도 합니다.

중국의 복숭아는 인도와 서남아시아 쪽으로 전래됐고, 기원전 300년 경 알렉산더의 페르시아 정복을 계기로 그리스에 전해집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복숭아를 ‘Persian apple’이라고 불렀고, 이것이 유럽어에 남아서 peche, peach가 됩니다. 20세기 이전까지 유럽인들은 이 과일의 원산지가 페르시아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이 과일의 학명이 Prunus Persica인 이유입니다. 복숭아는 로마인들에게 매우 사랑 받는 과일이었고, 이후로도 널리 재배됐지만, 아쉽게도 복숭아를 활용하거나 가공한 관습이나 기록은 발견하기 힘듭니다. 가장 오래 재배한 과일 중 하나인 복숭아이지만, 보관과 유통은 과일의 활용에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탈리아 부근에서 널리 재배되던 복숭아는 16세기 스페인 탐험가를 통해 신대륙에 전래되고, 17세기가 되어서야 역으로 영국과 프랑스에 수입됩니다. 영국은 복숭아를 북아메리카 식민지에도 심었는데, 이 과일은 19세기가 될 때까지 상업적으로 생산된 기록이 없습니다. 이 역시 보관과 유통 기술이 결정적인 영향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복숭아 증류주를 비롯해 잼이나 통조림 등 대부분의 복숭아 가공식품은 관련 기술이 발명된 19~20세기 즈음 등장하기 시작하며, 복숭아를 활용한 현존하는 레시피들 역시 이 시기 이후에 만들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숭아의 활용에 대해 추측해 볼 수 있는 힌트가 하나 있기는 합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온 이름이 있으니, 바로 nectarine입니다. 복숭아의 자연 변종을 넥타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단어는 17세기 경에 처음 영문으로 기록된 것이 발견됩니다. 넥타린의 이름은 올림푸스의 신들이 먹고 마셨다던 신들의 음료 넥타를 연상시킵니다. 신들의 음료 넥타가 넥타린의 어원과 연결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은 그동안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품어 온 의심이지만, 이를 확실하게 연결지을 수 있는 구체적 증거는 아직 부족한 상황입니다.

올림푸스의 신들이 먹는다는 Nektar(음료)와 Ambrosia(음식)는 별 구분 없이 혼용되다가, 호메로스(homeros)의 시 이후에 음료와 음식으로 나뉘어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이를 추적해 보려고 해도 ‘호머’라는 인물에 대해 의문이 많은 만큼, 그 시점과 어원을 특정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다만 가장 생각해 보기 쉬운 것은 과일발효주 fruit wine입니다. 보존이 쉽지 않았던 과거에는 대개 음료란 발효주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넥타 역시 술의 신 디오니소스(바쿠스)가 관장하는 것으로 이야기됩니다. 그러나 복숭아처럼 잘 상하고 물기 많은 과일은 가당을 하지 않으면 술로 담그기가 힘듭니다. 쉽게 술이 되지 않고 썩어버리는 복숭아를 보며, 그 달콤한 향기를 담은 양조주는 신들만이 만들어 마실 수 있는 음료라고 상상했을지도 모릅니다.

좀 더 접근해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됩니다. ​현재 영단어 nectar의 1번 뜻은 “sweet liquid in flower” 입니다. 많은 사전들은 이 뜻이 1600년 경에 처음 기록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즉, 꽃의 꿀물을 뜻하는 넥타라는 단어와 복숭아의 명칭 넥타린은 같은 시기에 발생한 것입니다. 한창 인류가 설탕 때문에 전쟁을 벌이고 노예 무역을 시작하던 시기에, 자연에서 나는 달콤한 설탕물이 새삼 ‘신들의 음료’로 묘사됐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유럽에서 설탕이 대중화되는 18~19세기 전까지, 민중이 단 맛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은 벌꿀과 석청 외에 과일과 꽃의 꿀물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딱히 귀족들에게 빼앗기지 않고 가장 공평하게 맛볼 수 있었던 꽃의 꿀물에 신들의 음료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는 점, 그리고 그 이름이 유독 달았던 과일인 복숭아에 붙은 점은 특기할 만 합니다.

또 다른 연결고리는 독일어의 Nectar pfirsich로, 직역하면 ‘nectar peach’라는 뜻입니다. 이는 현대까지 ‘넥타’라는 과일주스 카테고리로 연결되고 있지만, 역시 그 어원이 뚜렷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넥타란 ‘탄산이 들어가지 않은 소프트 드링크의 일종’으로, 과일의 과육을 머들링(muddling)하여 만든다고 나옵니다. 넥타 음료의 정확한 정의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데, 일반적으로 농축된 과일주스를 의미하며, 첨가물은 감미료와 보존제 정도로 한정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넥타의 제조법을 ‘머들링’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다른 많은 과일들과 달리 복숭아는 즙을 내어 음료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부드러운 섬유질이 밀도 높게 가득 차 있어, 면포로 짜도 즙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복숭아를 음료로 만들고자 했다면, 과육 자체를 잘게 찧어서 오늘날의 퓨레나 소스에 가까운 형태로 만들고 설탕을 넣어 달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교적 즙을 깨끗하게 짜낼 수 있는 과일들은 굳이 마시기 불편하도록 머들링하여 과육을 남길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넥타의 제조법에 머들링이 남은 것은, 혹시 복숭아를 이용한 흔적은 아닐까요.

 

 

Written by 김준기

베버리지 아카데미 에디터
"배워서/남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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