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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몬칼럼] 인스타그램 보고 메뉴 좀 만들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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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중에 한 놈이, 앞으로는 매주 주말마다 열심히 격투기 경기를 시청하면서 운동을 배울 거라고 합니다. 어릴 때 프로레슬링을 보며 따라하다가 팔을 부러뜨린 녀석인데, 20년이 흘러도 변함 없는 그 모습은 참 사랑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이 친구는 오디션 예능이 나왔을 때부터 매일 K팝스타를 보며 노래 연습을 했고, 요즘은 쿡방이 대세라며 백종원씨의 지도 편달을 받고 있다고 자랑하기도 합니다. 그런 녀석이니 대충 짐작은 갑니다. 아마 요즘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김동현 선수의 프로를 보고 있는 모양이지요.

요즘 카페 신(scene)에서 커피보다 음료 매출이 중요해지면서 수 많은 신메뉴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커피 일변도였던 카페 시장의 확장이란 면에서 일단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헌데 커피를 논할 때 기본적인 맛과 원료의 품질, 메뉴의 밸런스 등을 세밀하게 이야기하던 전문가들이, 다른 음료에 대해서는 그 진지한 태도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메뉴 의뢰를 받다 보면, 무조건 예쁘고 좀 더 튀어 보이는 메뉴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가장 많습니다. 음료의 맛보다는 사진 잘 받는 모양새에 집착하여, 잘 빠진 그림 만드는 법에 더 관심이 많더군요.

더 말해 뭐할까요. 이 뻔한 말을 하려고 이렇게나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새삼 분노가 치밉니다. 먹을 것이든 마실 것이든, 제일 중요한 건 맛입니다. 여러분이 만드는 그 메뉴들은, 맛이 없다면 존재 가치가 없는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물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건 나도 압니다. 근데 그건 떡이 보기 좋을 때 쓰는 말이지, 똥을 보기 좋게 꾸몄을 때 쓰는 말이 아닙니다. 손님에게 라떼아트를 해서 냈는데, 그저 보기만 좋고 비릿해서 맛도 없다면, 그게 라떼 음료인가요? 그냥 그림이죠. 그렇게 예쁜 게 좋으면 장식품을 만드세요.

음료의 맛보다 모양 꾸미는 데 더 신경을 쓰는 세상이다 보니, 심지어 프로라는 음료 개발자들조차 인스타그램이나 핀터레스트에서 메뉴 사진을 보고 그대로 따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연히 찾아 간 카페에서 방금 본 인스타그램 사진의 메뉴와 똑같은 걸 만들어 줘서 놀랐던 적도 있어요. 문제는 인스타그램에 레시피가 제대로 적혀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레시피는 상상이고, 독특한 컨셉이나 멋진 겉모습만 따라하는 게 전부죠.

커피를 만드는 데 있어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있겠습니까. 생두부터 로스팅, 추출, 서빙까지, 하나라도 대충하면 큰일나겠죠. 바리스타들은 그날 온습도를 보고 커피 분쇄입자를 미세조절하고, 탬핑 자세나 탬퍼의 종류까지도 온갖 정보들을 가져다가 이렇게 저렇게 신경을 쓰죠. 근데 커피 말고 다른 음료메뉴는 그냥 인스타그램 사진 몇 장 슥 보고 따라해도 되는 건가봐요. 음료마다 사용하는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재료들, 상황에 따른 블렌더 사용법, 적용 가능한 레시피 수정 방식, 본질적인 맛과 향의 품질 등은 어차피 모르는 거니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좋은 거겠죠.

뭐, 아무렴 어떻습니까. 그저 화려하고 예뻐 보이면 잘 팔리는 시대이니까요. 비록 몇몇 사람들이 한 번 먹고 질려서 두 번 다시 오지 않게 된다 해도, 그 덕에 페이스북 좋아요 숫자가 늘어나면, 그게 행복이요 사는 즐거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재료 효율이 다소 떨어져 재고 관리가 엉망진창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꼭 멋진 메뉴 열심히 따라서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 메뉴 하나가 점주의 진정성과 매장의 전부를 설명해 줄 테니까요.

 

 

Written by 베몬

평소에는 온순하나 음료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마주할 때면 지옥불과 같은 분노를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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