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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의 기원을 엿보다

미디어 속 음료 엿보기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미디어에서 다뤄진 음료를 소개합니다. 보통 음료가 미디어 속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장면들을 조금만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 해당 음료에 대한 정보나 그것에 얽힌 문화나 시대상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미디어 속 음료 엿보기’에서는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영화 속 음료들을 꺼내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포스터
코미디, 드라마 / 독일(구 서독), 미국 /  91분 감독 : 퍼시 애들론  / 주연 : 마리안느 세이지브레트(자스민), CCH 파운더(브렌다)

 

‘미디어 속 음료 엿보기’에서 첫 번째로 소개할 영화는 ‘바그다드 카페’입니다. 1987년 개봉한 이 영화는 ‘calling you’라는 OST로 잘 알려진 영화이기도 한데요. 미국 캘리포니아 사막에 있는 낡은 카페, ‘바그다드’를 배경으로 두 여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영화의 스토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을 여행하던 한 독일인 부부가 여행 도중 심하게 다투게 되고, 급기야 화가 난 부인 자스민(마리안느 제게브레히트)은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자신의 짐을 들고 내리면서 헤어집니다. 길을 걷던 자스민은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바그다드 카페에 머물게 되죠.
카페 주인인 브렌다(CCH 파운더)는 이 낯선 독일 여인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자스민의 짐에서 남자 옷이 나오자 도둑으로 의심하고 경찰을 부르는 해프닝까지 겪습니다. 브렌다는 피부색도, 체형도, 문화도 다른 자스민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사실 브렌다의 삶은 힘에 겨워 여유가 없습니다. 매일 같이 빈둥거리기만 하는 무능력한 남편과 도무지 말을 듣지 않고 반항만 하는 아이들이 그녀의 삶을 힘들게 합니다. 게다가 이들을 뒷바라지하며 운영하는 카페마저도 신통치 않죠.
헌데 자스민이 오고 난 이후 카페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자스민이 취미 삼아 선보인 마술은 금세 소문이 나고, 사람 하나 없던 바그다드 카페에는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합니다. 자식이 없던 자스민이 브렌다의 아이들을 살갑게 챙겨주면서, 브렌다의 삶에도 활기가 생깁니다. 결국 브렌다는 자스민에게 마음을 열고, 소중한 가족의 일원이 되어갑니다.


 

‘영화와 카페’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떠올리시겠지요. 아마 제목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카페는 음료를 만들고 서빙하는 실제 카페라기 보다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배경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카페에서 커피가 등장하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 영화는 문화권에 따라 커피음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주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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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건 노란색 보온병입니다. 이 보온병은 자스민이 뒷좌석에 잘 묶어 두었지만, 부부싸움이 벌어진 이후 남편이 캘리포니아 사막에 버려두고 떠나 버립니다. 자스민은 이 보온병을 보지 못하고 계속 길을 걸어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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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워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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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몰던 차 트렁크에는 아까 그 보온병이 실려 있다

 

마침 지나가던 트럭이 자스민을 발견하고 태워주려 하지만, 그녀는 낯선 이의 호의를 거절합니다. 그런데 화면을 빠져 나가는 그의 트럭 뒤에, 자스민의 남편이 두고 간 것이 분명한 노란 보온병이 실려 있습니다. 이 보온병은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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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카페에서 맥주를 안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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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커피도 안 된다고?’

 

한편 자스민을 내버려두고 떠난 남편은 그녀를 찾다가, 근처에 있던 ‘바그다드 카페’를 들러 맥주를 주문합니다. 카페 직원은 주류 허가를 받지 못해 맥주를 판매하지 않는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하죠. 그는 할 수 없이 다시 커피를 주문했지만 역시 거절당합니다. 하필 커피 기계마저 고장 났던 것입니다.
마침 브렌다의 남편이 노란 보온병에 있던 커피를 따라주면서 위기를 모면합니다. 심지어 자스민의 남편은 이 커피 맛이 괜찮다고 만족스러워 합니다. 물론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겠죠. 다름 아닌 자신이 마시던 커피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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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보온병에는 로젠하임(rosenheim)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습니다. 여기서 로젠하임은 독일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자스민이 이 지역 출신이라는 것을 암시하죠. 커피 역시 그 지역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추측은 이 보온병의 커피가 등장하는 또 다른 장면을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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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엑, 이건 독이야’

 

뒤이어 콕스가 커피를 찾습니다. 종업원은 다시 보온병에 담긴 커피를 건넵니다. 이번에는 그리 성공적이지 않습니다. 커피를 마신 콕스는 얼굴을 찌푸리며 커피를 뱉어냅니다. 그는 ‘맛없는 커피’를 줬다며 소동을 부립니다. 종업원은 기지를 발휘합니다. 커피에 뜨거운 물을 가져와 콕스의 커피잔에 붓습니다. 다시 잔을 들이킨 콕스는, 아까와는 다르게 커피가 ‘훨씬 낫다며’ 환한 미소를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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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씬 낫군(방긋)’

 

여기서 잠깐, 혹시 커피에 물을 붓는 장면에서 뭔가 떠오르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에스프레소 커피에 물을 부어 만든 아메리카노 커피가 연상되지요. 진한 커피를 즐기는 유럽과 달리 연한 커피를 즐기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아메리카노 커피의 기원을 그럴듯하게 재구성한 장면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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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물 타지 마세요’

 

한편 자스민 역시 바그다드 카페로 들어와 커피를 주문합니다. 콕스는 그녀에게 커피를 따른 뒤 물을 부으라고 이야기해 줍니다. 그로서는 ‘맛있는 커피’를 위한 배려였지만, 자스민은 거절합니다. 이렇게 커피를 두고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장면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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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종업원은 아예 보온병에 물을 들이 붓습니다. 이 모습을 보던 자스민이 그러지 말라고 훈수를 두자, 종업원은 이내 알았다며 물 붓기를 중단합니다. 하지만 카페의 손님들은 의외로 반응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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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훌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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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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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커피가 아니라 완전 물이네요. 물’

카페의 사람들은 이 커피를 만족스러워 하지만, 이제는 반대로 자스민의 표정이 엉망이 됐습니다. 늘 마시던 커피에 비해서 묽디 묽은 이 커피를 자스민이 어떻게 느끼는지는 저 표정에 잘 나타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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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렌다의 뒤에 보이는 기계가 바그다드 카페에서 원래 사용하던 커피메이커입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추출할 수 있는 대용량 브루어로, 미국의 커피문화를 상징하는 아이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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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카페는 끝내 커피메이커를 고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는 브루어의 상단부를 떼어 보온병 위에 걸쳐놓고 커피를 추출하네요. 필터 드립 방식을 깨달은 것인지, 아니면 보온병을 마법의 기구 쯤으로 생각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계속해서 커피 미분이 가열되는 상업용 브루어보다 기분 나쁜 맛은 많이 줄어들겠지요.

영화 초반부터 등장하는 보온병과 카페의 고장난 커피메이커는 전혀 다른 성향을 지닌 주인공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두 여인이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필요를 채웠던 것처럼, 브루어와 보온병 역시 하나가 되어 훌륭히 그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 영화는 독일인 감독인 퍼시 애들론이 영어로 만든 첫 작품이며, 그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독일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개봉하게 되는데요. 재밌는 것은 두 나라에서 각각 다른 타이틀로 개봉했다는 점입니다. 미국에서는 오리지널 타이틀인 ‘바그다드 카페’로 개봉한 반면, 독일에서는 ‘Out of Rosenheim’라는 타이틀을 달았습니다.

캘리포니아 사막 한 가운데서 촬영된 ‘바그다드 카페’를 보고 있노라면 ‘Out of Rosenheim’이라는 독일판의 제목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상영시간이 미국판은 95분, 독일판은 108분으로 차이가 나는데, 아마도 이 13분의 러닝타임에 독일에서부터 시작된 자스민 부부의 갈등이 담겨져 있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평소 자스민을 흠모한 콕스의 청혼으로 장식합니다. 외국인인 자스민은 체류기간이 만료 돼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콕스와의 결혼을 선택함으로써 로젠하임을 떠나 미국에 정착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독일판 제목도 영 어색하지는 않습니다(혹시 두 버전의 차이를 아시는 분이 있다면 제보 부탁드립니다).

 

 

Written by 베버리지 아카데미

재미있고 유익한 음료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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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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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커피에 관한 영화 발표를 준비하면서 우연히 들렀습니다. 바그다드 카페라는 영화가 정말 제가 본 대로 커피와는 관계가 없는 영화인가 억울한 마음이 드는 참이었는데 (영화의 재미와는 별개로) 덕분에 커피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를 캐치하게 되어 감사 전합니다. 연말 까지도 좋은 일 있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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