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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세상탐험기] 5. 복숭아 이야기 두 번째 : 넥타린

Prunus persica

by Jill Weisenberger
by Jill Weisenberger

 

내과피가 나무처럼 단단하게 변해 그 안의 종자를 보호하는 열매들을 ‘핵과’라고 하며, 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과일이 복숭아입니다. 중국에서 신선의 과일로 여겨지던 복숭아는 페르시아를 거쳐 그리스와 로마로 전해졌고, 오리엔트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던 유럽인들은 이 과일을 ‘페르시아의 사과’라는 뜻으로 peach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 귀한 과일은 신의 음료 ‘넥타’에서 이름을 따 nectarine이라 하기도 했습니다. 복숭아를 통해 우리는 과일 경작의 기초적인 비밀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프룻티어의 과일세상 탐험기 글 김준기 / 제작지원 cherry

 

복숭아 나무에서 이상한 열매가 열리다

인류가 7천 년 넘게 경작한 복숭아는 오늘날 수백 여종의 경작종으로 분화했습니다. 유전학이 복숭아에서 발견한 수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과육의 색상에 따라 황도와 백도로 구분하기를 좋아합니다. 상당히 쉽고 직관적인 구분법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과육의 색상에 따라 맛과 향미 등이 달라지는 경향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이 둘을 구분해 사용합니다. 이런 관습은 서구인들도 비슷합니다. 껍질에 털이 있는 핑크색 복숭아를 peach라고 하고, 털이 없고 매끈하여 붉은 껍질색이 선명한 것을 nectarine이라고 구분합니다. 한때 이 넥타린은 생김새 때문에 ‘복숭아와 자두의 교배종’으로 이야기되기도 했지만, 사실 복숭아와 넥타린은 모두 같은 Prunus Persica 종입니다. 비록 생김새와 특징이 판이하게 다르더라도, 오늘날 우리가 먹는 복숭아 열매는 모두 형제간입니다.

과육의 색상과 껍질의 털 유무 외에도 과육의 질감, 과육과 경화된 내과피의 접착력, 과일의 모양 등은 모두 복숭아를 상업적으로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복숭아와 같은 핵과(Stonefruit)는 과육과 핵이 잘 분리되는지 여부에 따라 점핵종(clingstone)과 이핵종(freestone)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조금 낯선 개념이지만, freestone은 먹기가 편해 일반 과일로 선호되고, 과육이 핵에 들러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clingstone은 통조림으로 가공합니다. 우리 농촌진흥청에서는 과육의 색깔에 따라 백육종, 황육종, 홍육종으로, 껍질 털의 유뮤에 따라 유모종과 무모종으로, 과육의 육질에 따라 연육종과 경육종으로 구분합니다. 국내 시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90년대부터 미국 시장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도넛 복숭아(Saturn peach)’도 있습니다. 모양이 납작하여 Flat peach라고 부르는 이 복숭아는 적재가 가능해 보관과 유통이 쉽고, 가공이 편한데다, 먹기도 간편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과일들이 모두 같은 종이라는 사실은 언뜻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복숭아와 넥타린은 생김새뿐만 아니라 맛과 향도 조금씩 달라서 전혀 다른 과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심지어 미국식약청조차 두 품종의 이름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통계도 따로 낼 정도입니다. 그러나 유전적으로 넥타린은 복숭아와 같은 과일이며, 식물학적으로도 같은 종입니다. 이 넥타린의 기원을 엿볼 수 있는 사건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흔치 않은 일이긴 하지만, 복숭아 나무에서 넥타린이 열려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기사). 이런 자연변이 현상은 복숭아 나뭇가지 일부가 유전적 불안정성 때문에 변이를 일으켰거나, 자가수분 과정에서 주변의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렇게 변이가 일어난 나뭇가지를 떼어 비슷한 근목에 접목(grafting)하면, 변이로 나타난 형질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습니다. 접목한 넥타린이 자라면 나무와 잎, 꽃 모두 모체와 똑같지만, 열매는 넥타린을 맺습니다. 심지어 주위에 복숭아 나무가 함께 있다면, 넥타린 나무에서도 복숭아가 열릴 수 있습니다.

현대 유전자 연구는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복숭아와 넥타린 96개 종의 유전적 차이를 SSR마커로 판별한 2006년 연구(Jaeho yoon, 2006)에 따르면, 복숭아와 넥타린은 매우 높은 수준의 ‘다형성(polymorphism)’을 보입니다. 연구팀은 당시까지 밝혀진 복숭아와 스윗체리의 108개 SSR 마커 중에서 33개를 선별해 총 283개의 대립형질을 밝혔습니다. 이 대립형질로 인한 전체 유전자의 다형성 정보량을 PIC(polymorphic information content) 값으로 계산해 나타냈는데, 예를 들어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Sikahakuho’ 품종과 ‘Matsumori’ 품종은 PIC값의 차이가 0.036에 불과하며, 유전적으로 가장 거리가 먼 ‘Denjiuro’ 품종과 ‘Baishanbitao’ 품종은 6.86 정도의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 대립형질은 총 4,560가지의 조합을 보였으며, 복숭아 종 내의 평균적인 유전정보 차이는 1.265였습니다. 한편 복숭아와 넥타린의 저장성에 관한 2012년 유전자 연구(Anurag Dagar, 2012)는 복숭아와 넥타린 변종 간 6천여개 이상의 유전자에서 417개의 변형이 나타나며, 이 두 품종간의 P값은 0.05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대립형질 중에서 넥타린의 특징인 ‘반질반질한 껍질’은 단 한 개의 대립형질로 인해 나타난 변형입니다. 복숭아 껍질의 털은 해충이나 병충해를 막기 위한 방어기전으로 추측되는데, 껍질에 털이 나는 형질이 우성(dominent)이며, 털이 없는 형질은 열성(recessive)입니다. 과육의 특징을 결정짓는 유전자는 또 다릅니다. 달고 신맛이 적은 흰색 과육이 우성이며, 새콤한 황색 과육은 열성입니다. 즉, 수정 과정에서 복숭아 특유의 형질을 획득하지 못한 개체가 넥타린의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숭아의 유전적 변이로 인해 넥타린이 생겼다’는 서술은 일견 사실이기는 하나, 다소 불충분한 면이 있습니다. 전혀 개연성 없는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사실은 풍부한 유전자풀 내에서 허용된 형질의 특이 발현이기 때문입니다.

 


 

수확된 복숭아와 넥타린의 차이점은 비단 껍질 털의 유무에서 그치지 않고 과일의 크기, 모양, 과육의 단단함, 껍질의 색상, 향미, 맛, 병충해에 대한 저항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이 모든 부분에 수 백가지의 대립형질들이 관여하는 것입니다. 이런 유전적 가능성은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 냈습니다. 사실 복숭아는 향긋하고 달콤한 과일이지만, 무른 과육 때문에 보관과 유통이 까다롭고 진열기간이 길지 않아 점점 재배면적이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이와 달리 넥타린은 상업적으로 가능성이 많은 다양한 형질들을 가지고 있어, 계속해서 개량 중입니다. 넥타린은 과육이 비교적 단단해 유통이 쉽고, 색상이 선명하니 진열해 두면 상대적으로 맛있게 보여 선택률이 높아집니다. 저장성 면에서도 비교우위가 있어, 넥타린은 영상 5도의 저장고에서 5주간 보관이 가능합니다. 복숭아 알러지를 유발하는 두 가지 알레르기항원 중 하나가 털과 관련이 있는데, 털이 없는 넥타린은 저자극성 품종 개량이 쉽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

넥타린의 자연변이가 매우 희귀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몇몇 재배자들은 분명 오래 전부터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중국에서 넥타린의 존재가 알려 진 것은 기원전 2천년 이전으로 보고 있으며, 복숭아와 마찬가지로 실크로드 교역로를 타고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 지방으로 전래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곤륜산과 함께 복숭아의 원산지로 꼽히는 중국 Tarim Basin 지방의 오아시스에서 넥타린이 처음 발생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나, 유럽에 소개된 정확한 경로나 시기는 불명확합니다. 로마인들은 이 품종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던 것 같지만, 르네상스기가 되면 유럽에서도 식물학자들이 넥타린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럽의 오래된 넥타린 품종으로는 ‘Lord napier’, ‘Precoce di croncels’, ‘Galopin’ 등이 있으며, 남부 이탈리아에서도 16세기부터 자생종으로 ‘Sbergie’나 ‘Merendelle’ 등 흰색 넥타린 품종을 기르고 있던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중국에서는 넥타린이 역사적으로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으며, 오늘날 중국에서 넥타린 자생종은 보고된 바 없습니다.

오늘날 복숭아는 전 세계적으로 2,100만톤 가량이 생산되며, 2011년 FAO 통계에 의하면 원산지인 중국의 생산량이 1위이고 이탈리아가 2위입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넥타린을 생산하지 않아, 오늘날 생산되는 넥타린의 30%가 이탈리아산이며, 20%가 미국에서 생산됩니다. 현대의 상업용 넥타린 품종은 1942년 미국에서 개발된 ‘Le grand’ 품종에서 시작됩니다. 뉴질랜드에서 20세기 초 개량된 ‘Goldmine’, ‘Lippiatt’ 품종과 함께 현대 서구권에서 넥타린 품종개량에 주로 사용하며, 이 세 품종이 현재 유럽과 미국에서 자라는 넥타린의 유전자에 공여한 모계 넥타린입니다. 우리 품종에 주로 영향을 준 현대 일본 넥타린은 유럽 고품종인 ‘Lord napier’, ‘Precoce di croncels’과 미국 경작종을 활용하고 있으며, 최근 중국 복숭아 육종 프로그램에는 현대 서구 품종이나 일본 품종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복숭아 유전자를 SSR마커로 분석했던 2006년 연구(Jaeho yoon, 2006)는 조사한 96개 품종을 총 6개의 그룹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 중 한국 품종은 93번 ‘안동수밀’ 품종(모체 불명), 94번 ‘장호원황도’ 품종(japanese yellow 변종), 95번 ‘월봉조생’ 품종(kuragatawase 변종) 세 가지였습니다. 장호원 황도의 경우 일본 황도인 ‘Nishio Gold’ 품종과 매우 유사하여(0.38) 근친관계를 증명했으며, 이들은 유전적으로 가까운 ‘Japanese white peach’ 품종 및 ‘Chinese flat peach’ 품종과 함께 그룹2-1로 분류됐습니다. 한국백도인 ‘월봉조생’은 ‘North American yellow’ 품종, 일본 백도인 ‘Meisei’, ‘Tasubanawase’와 함께 그룹2-2로 분류됐습니다. 한국산 개량품종인 ‘안동수밀’의 경우, 일본백도 품종이나 중국의 ‘Chongbanyulu’ 등과 가까운 관계에 있었으나, 또한 다른 중국 남부종이나 한국품종들과도 유사점을 보여 모체를 명확하게 밝혀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알아보기: 아종과 변종, 품종, 재배종
우리가 구분하는 황도와 백도, 넥타린이나 천도복숭아 등의 구분은, 같은 유전형질을 공유하는 최소 집단인 종(species) 내에서 또 다른 기준을 가지고 나눈 것입니다. 각 형질이 어떻게 달라졌느냐에 따라 표기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릅니다. ​이 표기에는 약간씩 의미의 차이가 있긴 하나, 사실 분류법 자체에는 아직 명확하게 통일된 규칙이 없습니다. 여기서는 자료 수집 과정에서 대부분의 원문들이 표기하는 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넥타린은 복숭아의 변종(varietas, var.)입니다. ​형질의 차이가 대대로 누적되면서 유전적으로 달라진 종 내의 집단입니다. 천도복숭아는 P. persica var. nucipersica라는 학명을 가지고 있는데, 서양에서는 이를 넥타린이라고 부르며, 종종 var. nectarina로 간단하게 표기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접하는 천도복숭아가 서양에서 말하는 넥타린과 같은 모습입니다.
한편 하나의 종이라고 해도, 풍부한 유전자 풀에서 어떤 형질이 발현되느냐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일 수 있습니다. 이 다형성 때문에 과일의 씨앗을 심으면 어떤 열매를 얻을 지 알 수 없으며, 우연하게 얻은 좋은 과일의 씨앗을 심더라도 같은 열매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마음에 드는 열매가 열린 나무의 가지를 잘라 두었다가, 씨앗을 심어 뿌리 내린 비슷한 나무의 밑둥에 접붙이는 방법(접목, grafting) 등을 사용해 형질을 보존합니다. 경제 작물들은 이렇게 인위적인 취사선택을 거쳐 개량 및 개발하게 되는데, 이를 품종(forma, for.) 혹은 재배종(cultivar, cv.)이라고 합니다.
동일종이지만, 지리적 분포나 형태 등이 다른 집단이며, 장래에 더욱 발달하여 다른 종으로 분화할 가능성이 높은 중간종은 아종(subspecies, ssp.)이라고 표현합니다. 품종이나 변종과 같이 하위체계여서 혼동이 있을 수 있으나, 같은 층위는 아닙니다.

 

 

 

Written by 김준기

베버리지 아카데미 에디터
"배워서/남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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