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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음료 이야기 1. 음식에서 음료로 : 식혜

Sik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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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의 말)
 조금 늦었습니다.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꼭 쓰고 싶었던 글이기도 하고, 많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기에, 이렇게 당부의 말로 사적인 인사를 건넵니다. ‘우리음료이야기’는 애국심이나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쓰는 글이 아닙니다. 한반도에는 세계 음료사에 견주어 보아도 충분히 획기적인 음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음료학을 정립하는 것은 우리 음료 발전에 있어 가장 필요한 일이지만, 현재 국내 음료업계의 성장에 비해 이 부분은 많이 부족합니다. 어디서나 전통에 대한 추임이 나오고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수사가 떠돌지만, 정말 그게 우리 것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이야기를 시작해야 논란도, 논의도 시작될 것이기에, 베버리지 아카데미가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 보려고 합니다. 우리 음료에 대한 서투른 정리 과정이라 생각해 주시고, 혹 잘못되었거나 고칠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꾸짖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음료 이야기

 

1. 음식에서 음료로

언젠가부터 분자 칵테일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어 받은 유산이 많지 않다보니, 외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무언가가 음료시장에 신선한 바람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유행은 보통 원래의 취지와 상관 없이 ‘남들이 하지 않는 좀 더 나은 무언가를 먼저 만들었다’는 자기 만족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때문에 유행이 지나 보편화되면 금방 시들해지곤 하지요.

분자 칵테일 유행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음식+음료’의 상태를 분자 칵테일이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먹을 것을 마실 것으로 만든다”는 개념은 적어도 우리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개념입니다. 우리 음료 중에서 음식에서 파생된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를 꼽아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ㄱ.식혜

우리 전통 음료 중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음료라면 단연 식혜이지 않을까 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명절이면 집집마다 으레 식혜를 만들어 즐기곤 했으니, 적어도 현재 2-30대 이상의 세대라면 정겹고 풍성했던 명절 풍경에서 식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헌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정작 식혜가 음식에서 유래 된 음료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잔뜩 가라 앉은 밥알에서 한 번 쯤 의심해 볼 만 한데도 말이지요.

 

“…곡식과 어육을 소금과 함께 넣고 삭히어 만든 종합식품 가운데 하나였다. 곡식의 식(食)과, 어육으로 담근 젓갈 해(醢)를 합쳐 식해(食醢)로 표기된, 한중일 세나라의 공통된 음식인 것이다…(중략)…찹쌀이나 좁쌀, 엿기름, 소금, 생선이 기본 재료요, 무, 생강, 고추, 파, 마늘 등 매운 양념을 첨가하고 있다. 이 매콤한 식해에서 매운 양념과 비린 어육을 탈락시켜 새로운 식품을 탄생시키고 있으니…(중략)…곧 식해에서 맵고 짜고 비린 요인을 제거, 밥과 엿기름 만으로 달콤하고 걸쭉하게 국물을 만들어 음료화 했다 하여 식혜라 부른 것이 아닌가 싶다”
– 이규태, ‘이규태 칼럼’ 중

 

대한민국 언론사상 최장기 칼럼 기록을 세운 언론인 이규태 선생의 글입니다. 저장음식 중에서도 쌀과 어육으로 만든 발효음식 ‘어장’은 아시아 문화권에 상당히 보편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고기를 쉽게 얻을 수 없던 시대에 생선만큼 좋은 단백질 공급원도 없었는데, 수확기에 비교적 풍부해지는 쌀을 이용해 어장을 담그면 일 년 내내 안전하게 보관해 둘 수 있었습니다.

이 어장은 오늘날까지도 동남아시아 식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현대적으로 변화한 사례는 일본의 ‘스시’를 들 수 있습니다. 번잡한 시장에서 어장을 팔던 상인들은, 생각보다 식재료의 회전이 좋아, 더 이상 힘들게 발효시켜 저장성을 높일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어장이었던 나레즈시, 후나즈시가 지금의 신선한 스시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 어장이 가장 독특하게 변화한 것이 식혜입니다. 쌀이 당화한 단계에서 음료로 마신 사례는 거의 유일하다고 봐도 좋을 만큼 독특한 발상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설탕이 흔하다 못해 넘쳐서 제한해야 할 영양분이지만, 과거에는 간간히 열리는 과일 외에 달콤한 맛 자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대의 식혜 한 잔은 특별한 날을 축하하기 충분했을 것입니다.

 

“…식혜에는 유자나 석류알을 띄우기도 하지만 고추나 생강을 풀어 고추식혜, 생강식혜를 만들어 어린아이 고뿔약으로 먹이기도 했다. 모계조상이나 술을 못 드시던 조상의 제사상에는 술을 식혜로 대신하기도 하며…”
– 이규태, ‘이규태 칼럼’ 중

 

식혜는 이처럼 다른 것을 첨가해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단 맛 외에 이렇다 할 향이 없으니, 고추나 생강 외에도 호박이나 고구마, 배 등 잘 어울리는 향을 넣어 베리에이션이 가능합니다. 우리 역사가 단절되지 않고 잘 이어졌다면, 이 기발한 발상이 또 어떤 식으로 변모했을지 모릅니다. 현대화 과정에서 깨진 밥알을 걸러내고 타피오카 펄 등을 넣어 식감과 모양을 새롭게 살렸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 식혜는 화석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일본의 스시를 부러워 하면서도, 우리가 가진 문화적 자산을 발전시킬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나 식혜는 저장 음식이 음료로 변형된,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우리 고유의 식문화입니다. 그 맛이 달콤하고, 식재료와 제조법, 음용법이 명확하니, 본래의 것을 잘 살리고 신중하게 개량하면, 새로운 전통 음료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Written by B crop

넓고 얕은 지식의 음료만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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