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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와 인물] 3. 조셉 프리슬리 – 인공 탄산수

음료와 인물

지금 우리가 마시는 음료는 오랜 역사 동안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발전해 온 결과물입니다. 현대 음료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탄산음료와 탄산수는, 인류가 막 공기에 대해 알아내기 시작하던 18세기 화학의 산물입니다. 음료와 인물에서 알아 볼 세 번째 인물은 조셉 프리슬리입니다. 그는 이산화산소 기체를 인위적으로 발생시키고, 이를 물에 녹여 소다수를 만드는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비록 그는 아메리카를 인도라고 믿었던 콜럼버스와 같았으나, 그의 발견은 이 멋진 음료가 되어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

 


 

3. 탄산수 Carbonated water

 

Carbonated Beverages

이산화탄소는 공기 중에서 최초로 분리된 기체입니다. 그 시작은 1640년대였습니다. 네덜란드 화학자 Jan Baptist van Helmont는 밀폐된 용기에서 숯을 태운 뒤, 남은 재의 질량이 원래 숯보다 한참 적다는 사실에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는 이 연소 과정에서 숯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물질’로 변했다고 생각하고, ‘혼돈chaos’을 뜻하는 그리스어를 차용해 ‘gas’라고 명명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백 년 후, 스코틀랜드 물리학자인 Joseph Black은 석회(분필, 탄산칼슘)에 산을 떨어뜨리면 가스가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는 일반적인 공기와 다르게 석회 속에 ‘고정되어 있는 공기’라는 뜻에서 ‘fixed air’라는 개념을 만들어 냅니다. 블랙은 이 ‘고정된 공기’가 일반 공기보다 무거우며, 일반 공기와 달리 연소나 생명 활동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또한 이 ‘고정된 공기’가 석회수를 통과하면서 탄산칼슘 침전물을 만들어 내는 것을 관찰합니다.

앙투안 라부아지에(Antoine-Laurent Lavoisier)와 조셉 프리슬리(Joseph Priestley)는 이 정도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던 18세기 유럽에서 연소와 산화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리즈로 이사할 무렵의 젊은 조셉 프리슬리의 초상
조셉 프리슬리 Joseph Priestley (영국, 1733.3.24~1804.2.6)

 

인류 역사에서 탄산이 아주 희귀했던 것은 아닙니다. 선사시대부터 인간은 맥주와 와인이 발효되는 과정을 통해, 음료 속에 든 탄산에 대해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드물긴 하지만 광천수 역시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탄산수였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이제 막 이 탄산의 정체에 대해 알아내던 참이었습니다. 1662년에는 영국의 물리학자 christopher Merret이 와인에 설탕을 더 넣고 2차 발효를 일으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 방법을 기술합니다.

프리슬리 역시 인류의 오랜 친구인 효모 덕택에 이산화탄소의 정체를 파악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아내의 건강과 재정 악화 등 여러 문제로 1767년 Leeds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 그는 사실 목회 활동을 하면서 신학자로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고, 교육자로서도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이즈음 벤자민 프랭클린 등과 교류하며 전기에 대한 저술을 출간한 참이었습니다. 막 과학자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은 그는, 전기와 화학 반응의 밀접한 관계를 따라가다가 화학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 리즈로 이사할 무렵에는 호흡과 연소반응에 대해 연구를 시작하기에 이릅니다.

프리슬리가 이사간 리즈의 집 근처에는 양조장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는 맥주 발효과정에서 거품이 일어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맥주 발효 과정에서 형성되는 공기층은 조셉 블랙의 ‘fixed air’로, 이 공기층에서 생쥐가 생존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습니다. 프리슬리는 맥주 발효통 속에 물을 담은 사발을 매달아 두었고, 이 물에서 상쾌한 맛이 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프리슬리가 고안한 소다수 제조설비
프리슬리가 고안한 소다수 제조설비

 

그는 블랙의 연구를 참고하여 백묵에 황산을 더해 이산화탄소를 만든 다음, 여기서 나온 기체를 물이 담긴 용기에 넣어 탄산수를 만드는 장치를 고안합니다. 1772년 “Directions for Impregnating Water with Fixed Air”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그는, 이 발견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발견”이라고 서술합니다. 이를 비롯해 활발한 연구 저술활동을 하던 프리슬리는 그 해에 자연철학(지금의 과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코플러 메달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프리슬리는 18세기 과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 위대한 연구가는 탄산수의 상업적 가능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 소다수가 선원들의 괴혈병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당시 James Cook 선장의 2차 항해에 탄산수 제조법을 전했을 뿐이었습니다.

이후 프리슬리는 산소를 발견하였으나, 당시까지 주류 이론이었던 플로지스톤 설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산소를 ‘탈 플로지스톤 공기’로 이해하는 데 그쳤습니다. 그의 발견은 라부아지에의 새로운 산소 이론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지만, 정작 자신은 평생 플로지스톤 이론을 고수합니다.

 

 

슈웹스의 제네바 시스템
슈웹스의 제네바 시스템

 

프리슬리의 저서를 보고 가장 먼저 인공 탄산수의 상업 판매를 시작한 것은 맨체스터의 외과의사이자 제산제를 발명한 약제사였던 Thomas Henry였습니다. 그는 프리슬리의 장치를 이용해 12갤런의 탄산수를 만들어, 당시 유명했던 독일 Selter 스파클링 광천수를 흉내 낸 “artificial Pyrmont & Seltzer waters”라는 이름으로 판매합니다.

본격적으로 인공 탄산수를 상업 생산한 것은 Johann Jacob Schweppe이었습니다. 시계와 보석을 취급하던 그는 프리슬리의 저서를 보고, 탄산수 시장의 거대한 상업적 가능성을 직감합니다. 18세기는 전 세계적으로 항해 전단이 구성되던 대항해시대였지만, 아직까지도 괴혈병 등 장기간 항해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초기 탄산수는 괴혈병을 막아줄 수 있는 ‘약’으로 여겨졌고, 토마스 헨리를 비롯한 약제사나 화학자들이 수제 탄산수를 만들어 막 산업이 일어나던 시기였습니다.

1780년 슈웹은 보석상 일을 정리하고, 인공 탄산수의 상업적 생산 방법을 고민합니다. 3년 뒤, 그는 스위스 제네바에 ‘슈웹스’를 설립하고, 이른바 geneva-system을 가동하여 인공 탄산수의 상업적 생산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가 고안한 장치는 프리슬리가 제안한 대로, 압력을 주어 이산화탄소를 효과적으로 용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밀폐된 장치에 기초적인 펌프와 가스 발생기를 연결하여, 많은 양의 탄산수를 빠르게 생산하게 됩니다.

이 원리는 후에, 토마스 헨리의 아들인 윌리엄 헨리에 의해 ‘무극성 기체의 용해에 대한 헨리의 법칙(Henry’s law, 1803)’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초기 슈웹스 탄산수
초기 슈웹스 탄산수

초기 탄산수 에그보틀 감상하기

 

Written by 김준기

베버리지 아카데미 에디터
"배워서/남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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