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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세상탐험기] 그레이프푸르트와 자몽 Grapefruit

Citrus × paradisi

Pomelo (Citrus maxima)
Pomelo (Citrus maxima)

 

시트러스들은 오랜 지리적 단절을 통해 각기 다른 진화를 거쳐 왔습니다. 시트러스는 유전적 유사성에 의해 시트론citron, 포멜로pomelo, 만다린mandarin, 파페다papeda 4개의 주요 원종(true species)으로 분류합니다. 이러한 유전적 구분은 실제 과일의 향미를 구분해 사용하는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시트러스 들어가기 전문

과일세상 탐험기 글 김준기 / 감수 B crop

 

포멜로와 그레이프푸르트, 그리고 자몽

서구인들이 18세기 중반 바베이도스에서 처음 그레이프푸르트를 발견했을 때는 ‘금단의 열매’라고 불렀습니다. 금단의 열매(forbidden fruit)란 성서에 등장하는 선악과를 뜻하는 것으로, 서구인들은 오랫동안 이 금지된 과일의 실제 품종이 무엇이었는지 추측하여 전설을 만들기를 좋아했는데, 신비의 오리엔트에서 처음 본 탐스러운 열매들은 이러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한 세기가 다 지나도록 그레이프푸르트는 포멜로와 같은 과일로 여겨졌습니다. 두 용어는 동의어로 인식되었고, 그레이프푸르트를 ‘작은 섀독(포멜로 항목 참조)’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1837년 James MacFayden이 자신의 책에서 Citrus paradisi라는 새로운 식물학적 학명을 부여했지만, 이 때까지도 그레이프푸르트는 포멜로의 자연적 돌연변이로 이해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1948년이 돼서야 이 과일이 포멜로와 오렌지의 교배종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됩니다. 서로 다른 두 품종 간의 교배종을 학명에 표시하는 학명의 법칙에 따라 그레이프푸르트의 정식 학명은 Citrus x paradisi가 됩니다.

마치 포도처럼 열매들이 주렁주렁 모여 달린다 하여 그레이프푸르트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포도와는 전혀 상관 없습니다. 포멜로와 스위트오렌지를 교배하여 그레이프푸르트 품종들을 만들어 내며, 우리에게 익숙한 ‘Ruby red’나 ‘Star ruby’가 이렇게 만들어 졌습니다. 발현되는 형질에 따라 펄프의 색상이 흰색, 핑크색, 붉은색 등으로 변화합니다. 1929년 탄생한 루비레드는 이 붉은색 과육을 특징으로 하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자몽 주스의 붉은색 이미지를 처음 만든 품종입니다. 스타루비는 70년대 새로 개발된 품종으로, 루비레드보다 수확이 쉽고 붉은 색이 3배 가량 진한 것이 특징입니다. ‘Sweetie’나 ‘Merogold’ 등은 그레이프푸르트를 한 번 더 포멜로와 교배하여 만든 것으로, 단맛이 좀 더 강하고 특유의 쓴 맛이 옅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레이프푸르트는 1910년부터 미국 아리조나와 캘리포니아에서 수확되기 시작해 40년대에 본격적으로 상업적 생산을 시작했고, 자메이카, 트리니다드, 브라질, 이스라엘 등에도 식재됐습니다. 80년대에는 미국 플로리다에서만 1천만 박스를 수출하며 중요한 경제작물이 되었는데, 이 당시 상당한 물량이 일본으로 수입됐습니다. 사실 일본은 그동안 남미에서 이 과일을 수입해 왔었지만, 카리브과실파리(Caribbean fruit fly) 유충과 살균제 잔류 문제로 미국산을 주로 수입하기 시작합니다. 현재 전 세계 그레이프푸르트 생산량의 대부분은 중국과 미국이 점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레이프푸르트를 보통 자몽으로 번역합니다. 식자들은 ‘문단(文旦)과 자몽’이라고 구분하기도 합니다. 용례를 살펴보면 분명 포멜로와 그레이프푸르트를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원을 차근차근 짚어가면 썩 개운하지는 않습니다. 중국이나 대만 등지에서 추석 명절에 즐겨 먹는 원딴(文旦)은 현지에서 유자(柚子)로 보지만, 학명은 Citrus maxima로 씁니다. 이것이 일본에 건너간 것이 분탄(ブンタン)입니다. 중국에서 이르는 유(柚)는 서구 학자들이 papeda로 분류하는 것인데, 이 점이 시트러스 연구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일본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아마도 ‘자몽’이란 용어는 일본에서 건너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분탄을 일본에서는 자봉이라고 부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시트러스 품종 중에는 포멜로에 해당하는 Banpeiyu(晩白柚)와 Zabon(ザボン)이 있는데, 둘 다 ‘ブンタン(文旦)’으로 표기하고 Citrus maxima라는 학명을 병기합니다. 반면 비교적 최근에 수입된 그레이프푸르트는 음차하여 ‘グレープフルーツ’로 적습니다. 영어권에서 포멜로를 부르는 말 중에는 섀독 말고도 ‘Jabong’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보통 하와이 자봉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일본과 관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봉’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요.

우선 스페인어에서 시트론의 한 품종을 지칭하는 말 중에 zamboa라는 단어가 있는데, 여기에서 ‘자몽’이란 말이 파생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가장 널리 인용되고 있습니다. 잠보아 역시 그레이프푸르트로 자주 오인되었던 과일 중 하나입니다. 한편 일본의 한 페이지는 ‘1772년 가고시마현에 난파한 중국인 샤본탄이 과일 두 개를 전해 주었는데, 과육이 붉은 것을 샤본으로, 하얀 것을 분탄으로 불렀다’고 적고 있기도 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자몽을 그레이프푸르트의 번역어로 사용하고 있지만,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자몽 역시 포멜로를 이르는 말이었음을 의심하게 하는 여러 사례가 등장합니다. 시트러스 속에 대한 체계가 아직 완결되지 않아 당분간 이런 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레이프푸르트 특유의 향미는 그레이프푸르트 메르캅탄(grapefruit mercaptan)이라고 하는 황화합물에 기인한 것으로, 다른 시트러스 과일들과 차별점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유전적 구조 덕분인지 오렌지와도 잘 어울리며, 다른 시트러스들과도 특별한 문제 없이 비교적 잘 섞이는 편입니다. 자몽에이드는 항상 순위권에 있는 인기 음료로, 약한 쓴맛이 단맛의 텁텁함을 개운하게 해주고 자연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생과일로 자몽에이드를 만들 때는 이 약한 쓴맛을 잘 살려주는 것이 포인트로, 탄산수나 토닉워터 등을 함께 사용해주면 좋습니다.

Written by 김준기

베버리지 아카데미 에디터
"배워서/남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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