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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 중세의 비약이었던 코디알 Cordial

코디알
코디알

 

코디알cordial이라는 영단어는 ‘따뜻한’, ‘정중한’, ‘진심어린’ 정도의 뜻을 담은 형용사입니다. hearty(충성스럽다), sincere(성심, 진실하다) 정도의 유의어로 사용됩니다. 이 단어는 심장과 마음을 뜻하는 라틴어 ‘cord’에서 왔습니다. ‘cord-ial’을 직역하면 heart related, 심장과 연관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고풍스러운 단어가 음료를 이르게 된 흥미로운 역사가 있으니, 이른바 혼성 증류주입니다. 오늘날 코디얼은 리큐르와 같은 말로 쓰입니다. 리큐르Liqueur는 액화시킨다는 뜻의 라틴어 ‘liquifacere’가 프랑스를 거쳐 영어로 전해진 것입니다. 여기서 액화란 증류법을 의미합니다. 물질이 서로 다른 온도에서 기화하는 현상을 이용, 혼합액체을 가열하여 분리하는 기술입니다. 액체를 담은 still pot에서 분리해낸다 하여 distill이라고 합니다.

증류법 자체는 상당히 오래된 기술로, 바빌로니아 유적에서도 기초적인 증류기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초기 증류기는 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거나 향료를 만들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고대 중동의 증류기술은 1세기 경 그리스에 전래됐으나 명맥이 이어지지는 못했고, 이후 아랍 문명의 연금술이 유럽으로 다시 전래됩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12세기부터 발효주를 증류한 기록이 발견되고, 연금술이 본격적으로 유행하던 15세기 무렵 증류주가 널리 생산되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증류주가 술로 음용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기초적인 증류법은 향료 자체를 추출하는데 쓰였으나 품질이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다만 주정을 증류하여 만들어 낸 고순도의 알코올은 향료를 잘 녹여낼 수 있었고, 여기서 알코올을 날리면 품질 좋은 향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증류법은 오늘날까지도 향료 에센스를 만드는 대표적인 기술입니다.

물론 발효주를 증류하는 개념 역시 이 시기 연금술사들이 시도한 일입니다. 브랜디나 보드카 등 대표적인 현대의 증류주들이 13~14세기 연금술사의 실험실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좋은 주정을 증류한 증류주는 너무 고가였고, 품질이 떨어지는 주정을 증류하여 얻은 알코올은 악취가 심했기 때문에(cf. vodca) 이것을 음용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과일이나 허브 등 각종 향미재로 술을 담그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양의 허브 코디알은 우리의 탕약과 비슷한 관점으로 만든 약이었습니다
서양의 허브 코디알은 우리의 탕약과 비슷한 관점으로 만든 약이었습니다

 

증류 기술은 식물에서 고급 향료를 추출해 내는 기술이었고, 자연스럽게 약을 만드는 관점에서의 접근이 먼저 이루어졌습니다. 중세 유럽의 의학기술은 오랜 인류 역사 대대로 내려온 약초학herbalism에 기반하고 있었습니다. 식물을 약용으로 사용하는 학문으로, 오늘날의 대체의학이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는 이 당시 의학개념을 “샤머니즘적 복합체이자 사회적 합의”였다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명확한 인과관계를 밝혀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었던 과학으로서의 의학이 아니라, 신앙과 기원이었다는 뜻입니다.

중세 유럽 의학의 본질은 영적 문제였고, ‘활력’이란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활력을 주는 것은 생명력을 주는 약이라고 믿었습니다. 증류한 고도의 알코올에 백 수십가지에 이르는 각종 약초를 담가 추출한 중세의 약은, 심장을 빨리 뛰게 하고 체온을 높여 주었습니다. 이것은 물론 알코올이 교감신경을 자극하고 분해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중세인들에게는 ‘생명에 좋은 기운과 활력이 가득한’ 성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즉, 심장을 뛰게 하는 약이라는 뜻에서 ‘cord-ial’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중세인들에게 심장이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는 cardiotaphs(심장 무덤)에 대한 기사를 보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코디알의 기원은 중세 수도승들이 오랫동안 비밀스럽게 전해온 ‘비약(秘藥, elixir)’이었습니다. 우리의 관점에서는 수도원에서 술을 담그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으나, 그들이 만들던 것은 어디까지나 활력을 주고 영혼을 회생시켜 악성 질병으로부터 몸을 구하는 귀한 약이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샤르트뢰즈’와 같은 유명 허브 리큐르의 기원 역시 이런 코디알로, 이 술의 본래 이름은 “샤르트뢰즈 대성당의 약초비약(Elixir Végétal de la Grande Chartreuse)”입니다. 홈메이드 코디알 만들기

실제로 코디알은 꽤 오랫동안 약으로 음용됐습니다. 르네상스 동안 이탈리아의 약제상들이 코디알을 약으로 만들어 판매하여 널리 유행했으며, 코디알의 기원을 15세기 토스카나 르네상스로 적는 문서가 많습니다. 코디알은 취하기 위한 술이 아니라 약이었으므로, 적은 용량으로 한 잔만을 마시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도 이탈리아에서는 미니바에 있는 소용량의 스피리츠류를 ‘cordialino’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또한 코디알의 본질은 사실 높은 도수의 증류주였으므로, 중세인들은 종종 최음제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약국에서 코디알을 만들던 풍습은 꽤 오랫동안 유지됩니다. 화학지식을 갖춘 연금술사들은 17세기에 이르러 약사가 되었고, 자신들이 만든 약에 이름을 붙여 ‘특제약(patent medicine)’을 판매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닥터 제임스 진통제’라던가, ‘스카치 알약’, ‘브로덤스 코디알’ 같은 것들인데, 이런 약 중에는 간혹 오늘날까지 영향을 줄 정도로 훌륭한 것도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은 엉터리 약이었습니다. 이들은 마술이나 악단 공연 등으로 모객하여 약을 팔았고, 20세기에 이르러 관련법이 체계화되면서 돌팔이 약장수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 코디알-특제약은 강장음료(tonic)로 남거나 ‘코카-콜라’와 같은 현대적 착향음료로 진화하게 됩니다.

 

엘더플라워 코디알
엘더플라워 코디알

 

역사적 기원을 따지자면 코디알은 리큐르(Liqueurs d’italie)의 동의어이며, 다양한 약초로 가향한 허브리큐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넓게는 Schnappes나 Fruit brandy 같이 과일로 가향하거나 만든 증류주를 이르기도 하고, 문화권에 따라서는 알코올이 없는 Squash(무알콜 농축시럽) 등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여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코디알이라는 용어가 이렇게 혼용되는 이유를 명확하게 밝힌 문서는 찾기 어려우나, 음료 역사 전반을 살펴보면 짐작이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비약으로서 코디알이 존재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와 비슷한 음료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최초의 술 중 하나로 꼽히는 ‘미드(mead)’는 꿀의 높은 당도를 발효에 이용하는 양조주입니다. 꿀은 과실만큼 채취가 쉽지는 않지만, 당도가 높아 자연발효의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미드는 오래도록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왔습니다. 주로 벌꿀을 발효시켰고, 여기에 과일이나 곡물, 허브 등을 넣어 가향하곤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메테글린(metheglin) 같은 미드는 벌꿀에 생강, 차, 넛맥, 코리앤더, 시나몬, 클로브, 바닐라, 오렌지 껍질 등 다양한 허브와 향신료를 넣어 만들었으며, 민간에서 약용했습니다. Melomel, Bilbemel 등 과일을 넣어 발효한 미드는 물론, 맥주에 사용하는 향신료인 홉(hop)을 넣은 Braggot과 같은 미드도 있습니다. 허브리큐르인 코디알 역시 사실은 아주 오랜 기원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양봉이 흔해진 지금에도 벌꿀은 저렴하다고 하기 힘든 재료이므로, 민간에서 벌꿀로 술을 만들지 못하면 대신 꽃을 담갔습니다. 유럽의 대표적인 전통음료는 엘더나무의 꽃을 담근 것이었습니다. 엘더플라워와 레몬을 물에 끓여 며칠간 담근 것인데, 꽃에서 나온 당분과 레몬의 산이 보존력을 높여주었습니다. 유럽의 많은 민간 가정이 이렇게 만든 음료를 상비해 두고 감기 등에 약용으로 마시곤 했으니, 이를 엘더플라워 코디알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코디알이란 단어는 오랜 역사를 겪으며 용례가 복잡해 졌지만, 알코올이나 설탕 등 적당한 용매를 이용해 식물의 성분을 추출하거나 농축한 음료, 혹은 음료 원료에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Written by 김준기

베버리지 아카데미 에디터
"배워서/남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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