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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도구 바로알기 – 체즈베 Cezve

cezve & ibr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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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즈베(cezve) : 긴 막대 손잡이가 달린 터키식 커피 주전자

 

체즈베(Cezve)는 터키식 커피 추출용 기구입니다. 한국에서 터키식 커피가 아직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아서인지, 체즈베는 종종 이브릭(Ibrik)과 동의어로 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체즈베와 이브릭은 그 기능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어서 동의어로 쓰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우선 Cezve라는 단어는 터키어로, ‘불 속에서 빨갛게 달아오른 석탄’을 뜻하는 아라비아어 ‘جذوة(ember)’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 기구의 명칭은 터키식 커피를 다루는 많은 나라에서 čezve, jezve, zezwa, ǵezve, jazva, xhezve 정도로 변형될 뿐이고, 러시아 문화권에서는 단순하게 pot이라고 번역하여 부릅니다.

이런 이름이 붙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터키식 커피(Turkish coffee)란 비여과 커피 추출법 중 하나로, 곱게 분쇄한 커피원두를 체즈베(pot)에 넣고 서서히 끓이는 방식입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boiled’가 아니라 ‘simmered’, 즉 비등점 직전의 온도를 유지해 주는 것입니다. 끓어 오르기 직전에 열원 위에서 잠시 치웠다가 다시 가열하는 식입니다.

이 ‘터키식 커피’는 관용적 표현이 아니라, 유네스코에 의해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명사입니다. 마치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커피처럼, 추출하는 과정이 정해져 있고 거기에 맞는 기구가 존재합니다. 터키식 커피를 만드는 기구로서 커피를 끓일 수 있는 단지(pot)와, 손이 데이지 않도록 열원 반대 방향으로 길게 뻗은 막대 손잡이가 있어야 체즈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모두 체즈베입니다. 시대에 따른 변화와 진보가 있긴 하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전혀 변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뚜껑이나 손잡이, 주둥이의 형태 등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기구의 작동 원리와 그에 따른 핵심 구조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① 가장 기본적인 체즈베의 구조 ② 이브릭과 닮았지만 물을 끓일 수 있는 본체에 긴 손잡이가 달린 체즈베를 변형한 것 ③ 스테인리스와 실리콘 손잡이로 현대화 한 체즈베 ④ 체즈베 전기포트

 

물을 끓이는 도구이기 때문에, 체즈베를 제작하는 데 사용되는 소재는 한정적입니다. 가장 흔한 것은 열 전도율이 높고 인류가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구리와 청동, 놋쇠 등 동합금입니다. 최근에는 주방기기 제조기술의 발달로 스테인리스 제품도 많이 제조되고 있습니다. 녹이 생기지 않아 위생적이며 견고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터키식 커피를 즐기는 문화권에서는 전기포트 체즈베도 있는데, 사실 전혀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예전 체즈베의 특징인 긴 손잡이를 상징처럼 재현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이브릭은 체즈베와 달리 내용물을 끓일 목적으로 만든 기구가 아닙니다. 터키어 Ibrik은 아랍어 ibrīq에서 왔는데, 이 단어의 어원인 중세 페르시아어 ābrīz는 ‘물컵’이란 뜻입니다. 터키에서 이브릭은 물이나 와인, 기름 등 액체 내용물을 보관해 두었다가 따라내는 주전자로, 우아하고 긴 주둥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와 같이 은이나 백랍, 주석, 상감 도자기, 유리 등 다양한 소재의 이브릭이 있으며, 대체로 장식 기능이 강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브릭의 바닥 구조나 본체 장식, 소재를 고려할 때, 이것이 전혀 불 위에 올려 놓도록 고안된 기구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크고 무거워서 불 위에 들고 움직이며 커피를 끓이기에는 적당하지 않고, 손잡이가 본체 지름을 벗어나지 않아 열기에 화상을 입기 쉽습니다.

이브릭은 커피를 만드는 기구가 아니라 테이블웨어다. 다양한 소재와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민 이브릭들.
이브릭은 커피를 만드는 기구가 아니라 테이블웨어다. 다양한 소재와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민 이브릭들.

 

이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브릭과 체즈베 사이에서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아랍 문화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회 분위기도 한 몫 했겠지만, 무엇보다 미국 일변도의 서구 문화 탓일 가능성이 큽니다.

체즈베는 동일한 어원을 두고 번역되거나 조금씩 변형되어 각 언어권에 흡수되었는데, 그리스에서는 이 기구를 briki(coffee pot)라고 부릅니다. 20세기 그리스 이민자가 미국에 대거 유입되면서 이 단어가 영어권에 널리 퍼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리스 이민자가 많은 미국과 호주, 영국 등을 중심으로 체즈베와 이브릭의 혼란 및 병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주로 일본을 통해 미국 문화를 받아들인 한국에서도 이런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혼동을 부추긴 것은 아라비아식 커피(Al-Qahwa)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커피기구 ‘댈로’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Dallah(دلة‎‎)는 주둥이가 길고 멋진 손잡이와 뚜껑이 있으며, 호리병처럼 굴곡진 몸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이브릭으로 혼동하여, 체즈베와 이브릭이 모두 커피 도구라는 낭설이 퍼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에티오피아식 커피팟인 제베나도 이러한 오해를 부추겼을 것으로 보입니다.

 

Written by B crop

넓고 얕은 지식의 음료만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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