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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음료 이야기 4. 음식에서 음료로 : 냉국

Naengguk

 

우리음료 이야기

1. 음식에서 음료로

ㄱ. 식혜
ㄴ. 수정과
ㄷ. 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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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 냉국

우리 식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국’은 음식과 음료 사이에서 상당히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늘 밥상에 함께 올라오는 국은 먹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국물만 따로 마실 수 있는 음료이기도 합니다. 특히 수분을 섭취할 목적으로 만든 음식이자 음료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냉국’입니다. 우리말로 ‘찬국(暢국)’이라 부르기도 했던 냉국은 더운 여름철 해갈은 물론 입맛을 돋우는 데에도 좋아서, 많은 음식점에서 전채이자 ‘웰컴드링크’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근대 요리책으로 꼽히는 방신영 선생의 <조선요리제법(1917)>은 세 종류의 찬국 조리법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이가 들어가는 외찬국, 미역이 들어가는 메역찬국, 김이 들어가는 김찬국이 그것입니다. 이 중 미역찬국과 김찬국은 살코기를 양념과 함께 볶아 만드는 것으로 육수나 고깃국에 좀 더 가깝고, 수분이 많은 오이와 미역이 떠 있는 오이찬국은 수분 섭취 기능에 좀 더 집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늘고 어린 외는 둥근 그대로 얇게만 썰고, 굵은 외는 셋에 쪼개어 속을 오려내고 얇게(풀잎 같이 얇게) 썰어서, 초와 간장과 파 채친 것과(파는 오푼 길이로 잘러서 가늘게 채쳐서 하라) 고추 이긴 것 조금, 이 재료들을 다 넣고 섞어서 두어시간 두어다가 절거든, 먹을 때 물을 적당히 붓고 간을 맞추어 상에 놓나니라
- 한식 아카이브 ‘조선요리제법’ 5.냉국(찬국) 중 외찬국 설명 발췌

 

냉국은 씹을 수 있는 건더기를 품고 있어 조리음식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실제 음용에서는 물 대신 마시는 음료에 가까워 보입니다. 더운 날 음식점에 앉자마자 시원하게 냉국 한 사발 들이켜며 해갈하고 식욕을 돋우는 모습은 음료와 다름 없지요. 다만 이것을 음료로 보는 시각이 낯선 이유는, ‘음료는 달다’는 고정관념 때문일 수 있습니다. 냉국은 초와 간장(혹은 소금)으로 간을 합니다. 간이 딱 맞아 맛있지만, 새콤달콤한 전형적인 음료는 아니어서 식탁에만 머무르는 ‘음식’으로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풍요로운 오늘날에는 짠맛의 음료가 크게 매력적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음료의 본질적인 의미에는 더욱 가까울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의료 목적으로 개발된 ‘경구수액’입니다. 경구수액은 콜레라 환자의 탈수증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것으로, 소장 점막에서 나트륨과 포도당이 공동수송되는 기전(sodium-glucose co-transport mechanism)을 이용합니다. 1960년 개발될 당시까지 콜레라를 비롯한 설사병은 제3세계의 5세 미만 영유아 사망원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경구수액이 매년 3~5백만의 아이들을 살리고 있습니다.

 

During diarrhoea there is an increased loss of water and electrolytes (sodium, chloride, potassium, and bicarbonate) in the liquid stool. Water and electrolytes are also lost through vomit, sweat, urine and breathing. Dehydration occurs when these losses are not replaced adequately and a deficit of water and electrolytes develops.
- World Health Organization의 The Treatment of diarrhoea manual 발췌

 

나트륨(Na+)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세포가 필요로 하는 수분과 에너지원(글루코스, 아미노산)을 세포막 안쪽으로 운반하는 것입니다. 만약 나트륨을 비롯한 각종 무기염(전해질)이 없다면 세포 활동은 불가능해 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은 소량의 전해질로도 정상 기능이 가능하므로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약간의 무기력감을 느끼는 정도로 끝나지만, 설사병이나 다량의 땀을 흘린 비상 상황에서는 대량의 수분을 잃는 과정에서 나트륨 등 전해질도 함께 배출되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반드시 보충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구수액은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세포 활동에 꼭 필요한 물과 나트륨을 간단하게 보충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경구수액 매커니즘을 마케팅에 응용한 것이 이른바 ‘스포츠 음료’라는 기능성 음료군입니다. 시판되는 이온음료의 성분표기를 보면 어렵지 않게 소금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스포츠 음료는 어디까지나 감칠나는 감미음료로서, 의료용으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한 음료의 성분표기에는 250ml 당 탄수화물(당) 15g, 나트륨이 0.12g 정도 함유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공동수송 기전은 나트륨 이온과 글루코스가 1:1 비율로 필요하므로, WHO는 경구수액에 대해 물 1리터 당 식용 소금 3g과 설탕 18g을 넣도록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나트륨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연구에 따라 소금 2.5g, 설탕 30g을 권고하기도 합니다.

더운 여름철 농사일 등 야외활동이 많던 과거에는 냉국이 이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땀을 흘려 ‘기력을 소진한’ 상황에서 냉국이 빠르게 수분과 나트륨을 공급했을 것이고, 입맛을 환기시켜 충분한 식사를 유도하는 동시에 탄수화물의 흡수 및 분배를 원활하게 했을 것입니다.

 

냉국의 중요성이 결과론적인 기능성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독특한 한국의 국문화를 설명하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형식상 오이냉국은 미역국과 초희석음료 사이에 위치합니다. 물론 지역에 따라 고춧가루나 참깨 등 향미재를 첨가하거나, 고기를 볶아 국물을 내기도 하는 냉국의 조리법으로 미루어, 이것이 음식으로서 다루어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더위에 시달리고 지칠 때면 냉국 한 사발이 간절했을 것 또한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으며, 음료로서의 냉국을 다루지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 식문화에서 국과 음료의 관계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힌트는 ‘국물’이라는 단어에 있습니다. 건더기를 제외한 액체라는 뜻으로, 끓여낸 재료들을 먹기 위한 탕이나 스프, 죽과 같은 비슷한 형식의 음식 사이에서 국의 정확한 위상을 짚어 낼 수 있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국은 때로 건더기를 먹기 위해 만들기도 하지만, 주로 밥을 먹기 편하게 곁들입니다. 때로 식사 중에 목이 메일 때 마시기도, 때로는 그저 국물만 따로 내어 입가심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냉국의 존재는 국이 음료였다는 쪽에 좀 더 무게를 실어주고 있습니다.

Written by B crop

넓고 얕은 지식의 음료만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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