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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세상탐험기] 사과주 시드르 Apple cider

Malus x domest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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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과일 중 하나는 사과입니다. 동양에 귤(citrus)이 있다면, 서양에는 사과가 있었습니다. 이 과일은 충분히 단단하여 저장과 유통에 유리했고, 오늘날 세계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과일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인들이 사과의 향미를 보편적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떠올려 본다면, 이것은 충분히 과일의 왕이라 칭할 만 합니다.
과일세상 탐험기 글 김준기 / 감수 B crop / 제작지원 cherry

 

사과를 마시다

사과는 다재다능한 열매입니다. 나무에서 바로 따 먹을 수도 있지만, 조건만 잘 맞춰주면 1년 동안도 보관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과는 신선과일 말고도 주스나 소스로 만들거나, 슬라이스 하여 베이킹 재료로 활용했습니다. 특히 사과주스는 발효하여 와인이나 식초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사과와 배 열매의 주스*를 발효하여 만든 알코올 음료를 시드르/사이더라고 합니다. (* pear cider는 따로 perry라고도 함)

사과주를 뜻하는 단어는 히브리어 ‘chekar’나 이집트, 그리스의 ‘sikera’ 등 고대 언어에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 학자 플리니나 스트라보 등은 사과로 술을 만드는 과정을 상세하게 서술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사과주를 뜻하는 영단어 사이다cider는 프랑스 고어인 시드르sidre에서 왔습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체계적인 시드르 제조법은 프랑스에서 12세기 노르만의 cyder를 거쳐 영국으로 전래되었습니다. 당시 시드르는 곡식과 와인 등이 부족한 시기에 수분 섭취를 위해 야생 사과를 으깨어 만들었습니다.

사과주스를 발효시켜 만든 사이더/사이다cider의 정의는 다양합니다. 전통적인 영국식 사이다의 알코올 농도는 부피기준(alc/vol)으로 1.2%~8.5% 내외이며, 유럽의 시드르는 보통 3.5%~12% 내외입니다. 2차 발효 전에 설탕이나 주스를 더 첨가하여 최종 알코올 함량을 높이는 방법도 있으나, 발효로 만들 수 있는 알코올 함량은 12%를 한계로 봅니다. 알코올 함량이 10% 이상인 것은 특별히 ‘apple wine’이라고 합니다.

사이다는 특히 영국에서 인구당 소비량이 높으며, 가장 큰 사이다 제조회사인 H.P. Bulmer 역시 영국에 있습니다. 영국 법률상 사이다는 그 원료가 되는 사과주스 35% 이상을 함유해야 합니다. 그러나 전통펍을 지키고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영국의 소비자단체인 CAMRA(campaign for real ale)는 적어도 사과주스를 90% 이상 함유해야 진짜 사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프랑스에는 100% 사과주스로 만들어야만 시드르라고 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사이다는 사과를 사용하는 음료가 아닙니다. 19세기에 처음 이 사과 발효주가 일본에 전래됐는데, 이후 다양한 과일 발효주가 만들어지던 와중에 ‘샴페인 사이다’라는 제품이 개발됐으며, 이 제품이 한국으로 건너오며 오인되어 탄산음료를 사이다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설입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동명의 탄산음료의 정확한 분류는 ‘착향탄산음료’입니다. 이는 18세기 말 스웨덴의 화학자가 탄산수에 가향하기 시작한 것이 19세기 말 미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인공 탄산수소다파운틴에 대한 기사를 참고.

한편 북미지역에서는 양조주로서의 사이더를 ‘hard cider’로 구분합니다. 개척시대나 남북전쟁 동안 식수를 구하기 힘든 지역에서 사이더를 물 대신 음용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한 때 가장 인기 있는 음료는 사이더였습니다. 개척시대에는 영국 지주들이 사이더를 품삯으로 지급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이런 행위는 1887년 법으로 금지). 이후 음료문화가 다양해지면서 지난 100년간 하드 사이더는 줄곧 내리막을 걸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이더는 소프트 드링크를 의미하는 것으로, 거르지 않은 무알콜 사과주스를 지칭합니다.

 


 

21세기 들어 사과 발효주는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드 사이더의 성장은 크래프트 비어와 마이크로 증류주의 급팽창과 궤를 함께 합니다. 사이더를 제조하는 상위 10개 브랜드의 2012년 연간 성장률은 62%에 달합니다. 특히 다른 하드 드링크와 달리 사이더는 저녁식사에 올려도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고, 무엇보다 달고 향긋하여 선호도가 높다고 합니다. 신뢰할만한 지역 산물을 찾는 미국인들의 애국주의 경향도 사이더의 약진에 한 몫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과로 시드르를 만들 수 있으나, 특별히 시드르를 만드는 재배품종을 cider apple이라고 구분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먹는 사과와 달리, 다채로운 신맛을 지니고 있으며, 단맛과 함께 쓴맛이 나는 품종들입니다. 이런 사과들은 crabapple(Malus silvestris)이라 하여, 오로지 시드르나 깔바도스와 같은 사과음료를 만들고 블렌딩할 목적으로만 재배됩니다. 과일 자체에 과당이 너무 적거나 산이 너무 많으면 발효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나무에서 충분히 잘 익어 아로마가 풍부한 사과를 사용합니다.

일반적으로 시드르는 저렴한 음료이지만, 역시 와인처럼 섬세하고 다양하게 빚어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음료로서의 시드르 제조에는 적어도 4~50종의 사과를 블렌딩하여 사용합니다. 여기에 사용되는 크랩애플은 크게 sweet/ sour/ sweet-sour/ bitter 네 가지로 구분되며, 각 품종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발효 정도와 향미, 산도 등을 조절하게 됩니다.

미국의 한 하드 사이더 제조자인 Gregory Hall은 인터뷰에서 “포도가 와인이 되듯 사과는 사이더가 된다”고 비교합니다. 시드르 역시 사과를 수확하고, 밀링 및 압착한 주스에 이스트를 섞어 발효시킨 뒤, 통에 넣어 숙성하여 만드는 와인입니다. 당연히 사과품종이나 재배지에 따라 결과물이 많이 달라지며, 사과 재배지에 따른 떼루아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Written by 김준기

베버리지 아카데미 에디터
"배워서/남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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