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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세상탐험기] 서양배 Pear

Pyrus commun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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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대 지방의 중요한 과수 중 하나인 배pear는 서양과 동양의 종자가 서로 달라 완전히 구분됩니다. 서양배와 동양배는 종이 달라 교배가 되지 않으며, 그 맛과 향이 달라 쓰임에도 차이가 생깁니다. 한편 경제성을 가진 주요 동양배 종자는 대부분 일본에서 개량되어, 오늘날 동양배를 nashi라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 재래종인 돌배를 개량하고자 하는 노력도 많이 있었으나, 돌배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입니다.
과일세상 탐험기 글 김준기 / 감수 B crop / 제작지원 cherry

 

현재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배는 크게 동양종(Asian pear)과 서양종(European pear)으로 나뉩니다. 영문에서 종종 ‘common pear’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는 영어권의 시각에서 서양배를 지칭합니다. 아시아배는 국가별로 주로 재배하는 품종에 따라 Chinese, Japanese, Korean, Taiwanese, Oriental pear 등으로 표기하기도 하며, 생김새 탓에 sand pear나 apple pear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서양배는 거의 대부분 Pyrus communis종을 이르는 데 반해, 동양배는 주로 Pyrus pyrifolia종 외에, 중국의 Pyrus × bretschneideri(白梨)종과 시베리아/만주의 Pyrus ussuriensis종의 경작종을 포함합니다. 다만 이들은 유전적으로 P. pyrifolia의 아종으로 포함하기도 하므로, 여기서는 동양배를 P. pyrifolia에 한정합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동양배 경작품종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개량되어, 종종 梨의 일본어 음차를 따 nashi pear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배의 조상은 다른 여러 장미목과 마찬가지로, 신생대에 형성된 중국 서부 산맥지대를 원산으로 하고 있습니다. 많은 고고학적 증거들이 이 산맥을 중심으로 배의 종분화가 이뤄졌음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중동 지역을 거쳐 캅카스 산맥을 넘은 Pyrus 중에서 경제적으로 사용된 것이 P. communis이고, 동아시아 지역에 분포한 것이 P. pyrifolia입니다. 이 때문에 문헌에 따라서는 P. communis의 원산을 중동으로 적고, P. pyrifolia의 원산을 중국으로 적기도 합니다. 이 두 종은 오랫동안 서로 다른 환경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하여 전혀 다른 과일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배와 그 활용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기 다른 두 종을 비교 분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G. J. Silva 외, Origin, Domestication, and Dispersing of Pear (Pyrus spp.), Federal University of Pelotas, 2014

 

 

다양하게 활용된 서양배

 
서양배는 평균적으로 특유의 호리병 모양(pyriform)을 가지고 있으며, 대체로 매끈한 껍질과 부드러운 과육을 가지고 있습니다. 완전히 익은 과실을 따는 동양배와 달리, 서양배는 보통 녹색일 때 미리 수확해 상온에서 후숙시킵니다. 후숙시킨 서양배는 말랑하고 부드러워지며, 단 맛과 특유의 짙은 배향이 생겨 먹기 좋게 변화합니다. 이를 프랑스어로 poire blette(overripe pear)라고 불렀는데, 후에 영어에 들어와 bletting(과일을 먹기 좋은 숙도로 숙성시키는 것)이 되었습니다.

배는 이미 구석기 시대부터 채집되고 소비된 고고학적 흔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접붙이기를 통해 서양배를 재배한 기록이 나타나는 것은 그리스 시대부터이지만, 아마 이전부터 배나무를 인위적으로 식재하여 길렀을 것입니다. 서양에는 대략 25종의 야생종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그 중 P. communis의 아종인 야생종 subsp. pyraster와 subsp. caucasica의 교배로 나타난 것이 경제과실이 되었습니다.

현재 경작되는 서양배 경작품종의 대부분은 프랑스 품종입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Bon Chrétien(good christian)’ Williams라고 부르는 서양배로, 이 품종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15세기 루이7세가 병상에서 배를 먹고 ‘훌륭한 크리스챤’이라고 칭찬한 것이 이 품종의 별칭이 되었습니다. 이 배는 17세기 영국에서 윌리엄스라는 이름을 얻으며 널리 재배됩니다. 1799년, James Carter라는 미국인이 이 윌리엄스 품종 몇 그루를 가져다 양조장 근처에 심었는데, 이후 해당 양조장을 새로 구입한 Enoch Bartlett이 새로운 과일이라고 생각해 자신의 이름을 붙여 시장에 내 놓게 됩니다. 오늘날 윌리엄스와 바틀렛은 같은 재배종을 지칭하는 이명입니다.

서양 과일 산업의 현대적 품종개량은 상당수가 미국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현재 많은 재배품종이 미국 ‘바틀렛’의 후손입니다. 윌리엄스는 전형적인 서양배로, 달고 약간의 신맛이 있는 하얀 과육에는 알갱이가 전혀 없으며, 향이 매우 진합니다. 연두색에서 노란색으로 익으며, 붉은색 변종이 존재합니다. 다른 배보다 일찍 여물기 때문에, 여름에 즐길 수 있는 배라 하여 summer pear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리에 사용하기 좋으며, 다만 갈변이 매우 빨라 레몬즙을 뿌려 사용하기도 합니다. 보통 서양배는 퀸스를 근목으로 접붙여서 기르는데, 윌리엄스는 퀸스에 접붙이지 못하여 다른 경작종 배를 근목으로 하여 접붙입니다.

현재 전 세계에는 약 3천 종 이상의 배 품종이 있으며, 현대 종자개량을 통해 계속해서 조금씩 늘어나는 중입니다. 서구권에서는 다양한 배의 생김새나 과육의 특징 등을 대표적인 7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 관행이 있는데, 사실 이것은 체리를 아마렐과 모렐로로 구분하거나, 복숭아를 황도와 백도로 구분하는 것처럼, 유전학이 발달하기 전에 통용되던 옛날 지식입니다. 심지어 이런 구분은 서로 층위가 같지 않고, 정의한 시기나 시장에 따라 리스트도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 신뢰도도 떨어지는 편이긴 합니다. 하지만 서양배의 다양한 특질을 나타내는 구분이기 때문에, 실제로 서양배를 사용하고자 한다면 종자별 특징을 미리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대개 Anjou/Asian/Bartlett/Bosc/Comice/Forelle/Seckel 정도를 꼽습니다.

 

 

사과를 시드르로 양조한 것과 마찬가지로, 영국과 프랑스 등지에서는 서양배를 착즙하여 양조주를 빚었습니다. 이를 pear cider라고 하거나, 특별히 구분해 perry라고 불렀습니다. 시드르 양조에 일반 사과가 아니라 crab apple을 사용하는 것처럼, 페리 양조에도 특별한 배를 사용합니다. 페리를 만들 때 사용하는 배는 야생종으로, 식용 배에 비해 탄닌과 산의 함량이 높고 크기가 작습니다. 서구인들은 먹지 못하는 야생종을 활용해 고품질의 양조주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보통 페리는 사과 시드르에 비해 좀 더 단맛이 강한데, 이는 소르비톨sorbitol 때문입니다. 소르비톨은 감미재이지만 실제 당분이 아니라 당알코올로, 발효에 사용되지 않고 남아서 음료에 단맛을 냅니다. 또한 페리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서양배의 경우 시드르 애플보다 탄닌 성분이 많아서, 날카로운 산미가 알코올 음료의 쓴맛을 덮는 경향이 있습니다.

배를 양조한 기록은 이미 로마시대부터 존재했으나, 현대적인 제조법은 로마가 붕괴할 무렵의 프랑스(서프랑크)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한편 영국에서는 노르만 정복(1066) 전까지 페리 양조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음료는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전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16~17세기 즈음에는 영국에서 페리 양조가 성행하게 되는데, 이는 야생종 배를 기르기에 영국의 기후와 토양이 맞았기 때문입니다. 야생종 사과가 자라지 못하는 곳에서도 야생종 배는 자랄 수 있었다고 전합니다.

전통 페리 양조는 매우 힘든 작업이었기 때문에, 20세기 들어 잠시 쇠퇴하게 됩니다. 그러나 1950년대 들어 영국에서는 현대화된 시설에서 페리를 다시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Babycham사는 탄산이 들어간 양조 페리를 ‘샴페인 페리’로 홍보하여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전통주인 페리와 시드르를 고급 샴페인과 연결시킨 이 마케팅 때문에 경쟁 업체의 잦은 고소에 시달려야 했지만, 와인을 취급하지 않던 당시 영국 펍 문화에서 여성들의 선택을 받으며 인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오늘날 페리 역시 표준화된 상업 생산을 통해 제조됩니다. 시판되는 음료인 만큼, 알코올 농도를 낮추고, 감미료와 탄산, 사과주스 등을 첨가하여 제조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CAMRA(Campaign for real ale)와 같은 소비자 단체는, 상업적으로 가공 생산된 것을 pear cider로,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조된 것을 perry로 구분하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물론 전통 제조법으로는 상업 생산과 유통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소규모 지역생산자를 중심으로 크래프트 양조주가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한편, 영국시드르제조협회에서는 단지 페리 제조 과정에서 사과 주스를 25% 이하로 사용하도록 제한하고 있을 뿐입니다.

Written by 김준기

베버리지 아카데미 에디터
"배워서/남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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