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in:

[과일세상탐험기] 동양배 梨(nashi)

Pyrus pyrifolia

img_1367

온대 지방의 중요한 과수 중 하나인 배pear는 서양과 동양의 종자가 서로 달라 완전히 구분됩니다. 서양배와 동양배는 종이 달라 교배가 되지 않으며, 그 맛과 향이 달라 쓰임에도 차이가 생깁니다. 한편 경제성을 가진 주요 동양배 종자는 대부분 일본에서 개량되어, 오늘날 동양배를 nashi라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 재래종인 돌배를 개량하고자 하는 노력도 많이 있었으나, 돌배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입니다.
과일세상 탐험기 글 김준기 / 감수 B crop / 제작지원 cherry

 

현재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배는 크게 동양종(Asian pear)과 서양종(European pear)으로 나뉩니다. 영문에서 종종 ‘common pear’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는 영어권의 시각에서 서양배를 지칭합니다. 아시아배는 국가별로 주로 재배하는 품종에 따라 Chinese, Japanese, Korean, Taiwanese, Oriental pear 등으로 표기하기도 하며, 생김새 탓에 sand pear나 apple pear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서양배는 거의 대부분 Pyrus communis종을 이르는 데 반해, 동양배는 주로 Pyrus pyrifolia종 외에, 중국의 Pyrus × bretschneideri(白梨)종과 시베리아/만주의 Pyrus ussuriensis종의 경작종을 포함합니다. 다만 이들은 유전적으로 P. pyrifolia의 아종으로 포함하기도 하므로, 여기서는 동양배를 P. pyrifolia에 한정합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동양배 경작품종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개량되어, 종종 梨의 일본어 음차를 따 nashi pear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배의 조상은 다른 여러 장미목과 마찬가지로, 신생대에 형성된 중국 서부 산맥지대를 원산으로 하고 있습니다. 많은 고고학적 증거들이 이 산맥을 중심으로 배의 종분화가 이뤄졌음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중동 지역을 거쳐 캅카스 산맥을 넘은 Pyrus 중에서 경제적으로 사용된 것이 P. communis이고, 동아시아 지역에 분포한 것이 P. pyrifolia입니다. 이 때문에 문헌에 따라서는 P. communis의 원산을 중동으로 적고, P. pyrifolia의 원산을 중국으로 적기도 합니다. 이 두 종은 오랫동안 서로 다른 환경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하여 전혀 다른 과일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배와 그 활용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기 다른 두 종을 비교 분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G. J. Silva 외, Origin, Domestication, and Dispersing of Pear (Pyrus spp.), Federal University of Pelotas, 2014

 

 

신선과일로 사랑받는 동양배

 
동양배는 사과처럼 동그란 형태(apple pear)를 지니고 있으며, 대체로 까끌까끌한(sand pear) 껍질과 과육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의 동양배는 즙이 많고 당도가 높아 신선과일로 인기가 많지만, 수분 함량이 높아서 서양배처럼 잼으로 절이거나 요리에 활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됩니다. 경제 과실로의 우위 때문에 일부 문서에서는 ‘true pear’라고 수식하기도 하나, 반대로 보관과 유통이 어려워서 소비가 제한적인 면도 있습니다. 개량된 동양배는 수분이 많고 당도가 높은 반면, 향이 많이 옅어진 것이 특징입니다.

동아시아 부근에서 자생한 야생종과 잡종은 약 75종이 있으나, 오늘날 전형적인 동양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경작품종은 대부분 일본에서 개량한 P. pyrifolia종입니다. ’20세기(Nijisseiki)’나 ‘chojuro’, ‘hosui’, ‘Shinseiki’ 등이 있습니다. 한국의 ‘신고’나 ‘단배’, ‘신수’* 등은 이러한 일본 재배품종을 들여와 야생종이나 다른 재배품종과 교배한 것입니다. 자연잡종인 중국배P. × bretschneideri는 서양배와 동양배의 중간 형태를 띄고 있으며, 서양배인 bosc품종과 비슷하여 대량으로 재배 수출되기도 합니다. 중국배는 chinese white pear(baili)라고 하는데, 함께 nashi pear로 부르지만 우리가 먹는 P. pyrifolia와는 다른 종이므로 사용 시 주의를 요합니다. 시베리아배P. ussuriensis는 잘 먹지 않고 품종 개량에 사용하며, 후숙시켜 주스를 내면 좀 나아집니다.
 
* Shin Go : Korea, P. pyrifolia, Cheonjichon x Imamuraaki, (Japan 1929)
Dan Bae : Korea (1969), P. pyrifolia, Chojuro x P. ussuriensis (Chungsil)
Shin Soo : Korea, P .pyrifolia, Kikuchi x Kimizukawase (Japan 1965)

 
서양배와 동양배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과육 내 석세포(stone cell)의 분포입니다. 동양배는 과육 중간 중간에 석세포가 다량 군집하여 특유의 바삭함과 모래 알갱이 같은 질감을 냅니다. ‘배 먹고 이 닦기’와 같은 속담은 이 석세포가 치아와 마찰을 일으켜 생기는 현상입니다. 우리배 홍보 페이지에서는 이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고, 최근에는 천연스크럽제로 새로운 활용법을 찾고 있는 중이지만, 사실 그동안 동양배 품종개량과 재배는 이 석세포를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석세포는 과육의 강도와 씹는 질감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수크로스 함량과 반비례 관계에 있어 배의 전체 당도에도 영향(최진호 외, 2007)을 주기 때문입니다.

석세포의 정체는 핵과의 스톤입니다. 식물은 이 세포조직을 이용해 보호장벽을 만듭니다. 일반적으로 석세포는 과일의 단단한 껍질이나 종자의 껍질, 종자를 감싸는 내과피 등에 잘 발달하는데, 특히 내과피가 완전히 스톤화 된 것이 바로 핵과(drupe)입니다. 그런데 배는 중과피에서 석세포가 발달하면서 특유의 과육 질감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서양배보다는 동양배에서, 동양배보다는 퀸스나 모과에서 석세포가 더 많이 발견됩니다. 즉, 장미과의 이과(pome)들은 석세포 발달 단계에 따라 사과, 배, 퀸스, 모과 순으로 나열해 볼 수 있습니다.

최진호의 2004년 연구에 의하면, 석세포는 건기에 더욱 많이 발생합니다. 이 연구는 ‘과육내 석세포 발달을 억제하기 위한 재배 방법으로 토양 수분 건조조건에서 석세포 발달이 많았으며 석세포 함량 및 석세포의 크기는 만개 후 30일부터 60일까지 건조조건에서 가장 많았다. 따라서 배 과육내 석세포 발달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생육기간 동안 토양이 건조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며 생육초기 특히 만개 후 30일부터 만개 후 60일까지는 관수를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적고 있습니다. 즉, 석세포는 종자를 보호하기 위해 발생하는 것입니다. 장미과 생물들은 이를 과육 전체를 단단히 하는 데 사용했거나, 핵과의 형태로 진화하는 과정 중에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석세포 설명 참고(Sclereid).

* 최진호 외, Cultivar Differences of Stone Cells in Pear Flesh and Their Effects on Fruit Quality, 한국원예학회(HEB), 2007
* 최진호, 신고 배 석세포의 형태적 특성 및 주요 발생 요인, 전남대학교, 2004

 
오늘날 동양배는 주로 신선과일로 소비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맛과 향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선 표면의 얼룩 문제입니다. 배는 원래 불균일하게 익는 과일로(곰팡이에 의한 얼룩 제외), 다 익어도 색이 균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얼룩이 있는 과일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기 때문에, 품종 개량 과정에서 균일한 색상으로 과일이 익을 수 있도록 유전자 개량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균일한 색상으로 과일을 익게 만드는 Uniform ripening이 사실은 과일의 품질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점입니다.

이 문제는 토마토의 품종개량 과정에서 밝혀졌습니다. 원래 토마토의 자연품종은 완전히 익어도 표면에 녹색과 빨간색이 섞여 나타나곤 했습니다. 1920년대 브리더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변이를 유도했고, 마침내 균일한 초록색에서 균일한 빨간색으로 익는 토마토 품종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C. Nguyen 외, 2012)에 따르면, 표면에 얼룩을 만드는 유전자는 토마토 열매 스스로의 광합성 수준을 조절하고 당분 및 탄수화물, 비타민, 카로틴 등 영양성분과 향미성분을 생산할 수 있게 합니다. 빨간 토마토 열매에서 초록색 얼룩을 지운 대가로, 우리는 약 20% 정도의 당분과 풍미, 영양소를 잃었다고 합니다. 이는 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C. Nguyen 외, Uniform ripening Encodes a Golden 2-like Transcription Factor Regulating Tomato Fruit Chloroplast Development, 2012

 
또 하나의 문제는 중국 절기에 맞춘 추석입니다. 유명한 나주배의 경우 대부분 신고 품종인데, 이 품종의 정상적인 숙기는 보통 9월 말에서 10월 중순입니다. 9월 말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10월 첫째~둘째 주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매년 음력 8월 15일에 찾아오는 추석 명절은 이르면 9월 중순에서 늦어도 10월 초 입니다. 음력이 빨라지는 해에는 추석이 되어도 우리 배가 아직 제대로 익지 못한 상태인 것입니다. 참고로 중국배 품종인 ‘Ya Li’나 ‘Tsu Li’는 9월 둘째~셋째 주에는 숙기가 시작됩니다. 보통 중국과 한국의 기후가 절기 하나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배의 숙기 역시 보름 정도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추석이 일찍 찾아오는 해에는 미리 지난 해 수확한 배를 얼려 두었다가 출하하거나, 생장호르몬을 사용해 숙기를 억지로 앞당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스테로이드에 비교되는 식물생장조절제 지베렐린(giberellin)을 사용하면, 덜 자란 배도 금방 수확할 수 있었고, 수확기의 배는 훨씬 크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베렐린의 잘못된 사용이나 부작용으로 인해 배의 당도가 떨어지거나 과육이 스펀지처럼 퍽퍽하게 변하는 현상이 생겼고, 우리 배 맛이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돌게 됩니다. 이 문제는 현재 각종 인증을 통한 지베렐린 배제, 지베렐린 농가지원 금지 등을 통해 많이 해결된 상태이지만, 보기에 크고 예쁜 배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존재하는 한 생장촉진제 유혹은 계속 남아 있습니다.

 

Written by 김준기

베버리지 아카데미 에디터
"배워서/남주자"

41 posts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