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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세상탐험기] 만다린 Mandarin (2) 온주밀감과 사츠마

Citrus unsh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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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러스들은 오랜 지리적 단절을 통해 각기 다른 진화를 거쳐 왔습니다. 시트러스는 유전적 유사성에 의해 시트론citron, 포멜로pomelo, 만다린mandarin, 파페다papeda 4개의 주요 원종(true species)으로 분류합니다. 이러한 유전적 구분은 실제 과일의 향미를 구분해 사용하는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시트러스 들어가기 전문

과일세상 탐험기 글 김준기 / 감수 B crop

 

 

온주밀감과 사츠마

우리의 귤, 통칭 만다린은 오랜 시간 동안 원저우미강(温州蜜柑, 온주밀감)이었습니다. 만다린의 학명 중 하나로 언급되는 C. unshiu는 이 사실을 반영한 것입니다. 여기서 unshiu는 항저우를 성도로 하는 저장성(浙江省, 절강성)의 동남연해에 위치한 원저우(Wēnzhōu)시를 이릅니다. 특별히 꿀(蜜)이라는 표현을 수식어로 사용한 것이 눈에 띕니다. 시트러스속 중에서도 가장 달고 맛있는 귤은 오랫동안 ‘밀감(honey citrus)’이었으며, 씨 없는 귤(无核桔)이었습니다.

온주밀감(unshu mikan)은 동아시아 각국에 수입되어 귀한 과일로 재배되었습니다. 우리도 매년 밀감을 공물로 거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밀감은 오랜동안 다양한 경로로 지리장벽을 넘어 서양으로 전해졌을 것이나, 현재 추적 가능한 전달 경로 중 가장 오래된 하나는 18세기 예수회의 플랜테이션입니다. 중국에 들어와 있던 예수회 선교사들은 온주밀감을 당시 스페인 식민지였던 New spain(남미와 신대륙)에 옮겨 심게 됩니다. 오늘날 미국 뉴올리언스에 존재하는 온주귤은 이 경로를 따라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온주밀감의 본격적인 전파와 개량에는 일본이 많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동아시아 문명 중에서 서양의 개항 요구에 가장 먼저 직면한 것은 일본이었습니다. 당시 가고시마를 지배하고 있던 사츠마번은 서양열강과 통상조약을 맺은 막부를 지지하고 있었고, 1863년 영국 함대와 전투를 벌이면서 근대화의 필요성을 일찍 깨닫게 됩니다. 밀감은 비록 사츠마번의 특산물은 아니었지만, 초기 개항 과정에서 고구마와 함께 ‘사츠마 오렌지(satsuma orange)’라는 이름으로 서양에 소개(George R. Hall, 1878)됩니다.

일본에서 부르던 정확한 이름은 ‘owari mikan’으로, 이 명칭에 대해서는 많은 문서들이 “당시 미국 대사의 배우자에 의해 개칭된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 이 주인공으로 꼽히는 Robert B. Van Valkenburgh는 1866년부터 1869년까지 일본 대사로 근무했으며, 그의 아내는 아일랜드인 Anne Simpson Van Valkenburgh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일본 보신전쟁(무진전쟁)에도 관여했으며, 1874년에 플로리다로 돌아와 대법원 판사로 지내게 됩니다. 플로리다 대학의 기록에 의하면, 반 발켄버그가 판사로 재직하던 1878년, 가고시마 현에서 사츠마 나무를 보내와 집에 심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비록 이 종의 원산은 중국이라고 하나,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만다린은 일본에서 개량되어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됩니다. 일본에서 개량된 사츠마 오렌지 품종은 도리어 1916년 온주시에 역수입됩니다. 우리 감귤 역시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주와 남부 해안에서 공물 생산을 위해 관리되던 종자는 온주밀감과 한반도 토착귤의 자연교배종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공물로 바치기 위해 재배된 것이고,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가혹한 역에 해당했기 때문에, 이 종자가 상업적 소비와 생산을 위해 개량을 거친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황교익 칼럼니스트는 이에 대해, “1894년(고종 31년) 갑오개혁으로 공물제도가 없어지자 제주의 감귤나무는 버려졌다(네이버캐스트 ‘팔도식후경’ 중)”고 적고 있습니다. 제주에 감귤이 다시 등장한 것은 1950~60년대의 일이며, 정부의 정책적 지원 아래 일본의 상업 품종이 대거 도입되었습니다.

아무튼, 일본의 오와리 미감은 사츠마 오렌지라는 이름으로 1908~1911년 사이 백만 그루 가까이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시트러스 나무는 보통 수명이 백 년 이상으로, 이 때 심은 귤나무는 아직도 플로리다에 남아 있습니다. 또한 플로리다를 비롯해 루이지애나, 텍사스, 앨라바마 주에는 Satsuma라는 마을이 생기게 됩니다. 만약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우리는 사츠마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크리스마스 오렌지의 기원

귤은 온대과일로, 겨울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지역에서 11월부터 2월까지 결실을 맺습니다. 따라서 우리 설의 기원인 중국의 춘절(음력 정월 초하루)이면 가장 흔한 과일 중 하나가 됩니다. 중국어로 橘은 [jú]로 발음하는데, 이 음이 ‘길할 길吉’의 음 [jí]과 같아, 중국인들은 춘절이 되면 서로 귤을 선물하고 나눠 먹는 풍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자어를 우리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일본에서도 이 풍습은 동일하게 지켜졌습니다.

한편, 개항 이후 일본은 적극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탈아시아를 꿈꾸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인재들을 서구 열강에 유학보냈고, 상당한 숫자의 일본인 인구가 국외에 거주하게 됩니다. 이 때 일본인들은 자기 개혁의 한 방법으로 양력설을 쇠기 시작했고, 이것이 갑오경장을 거쳐 우리 문화에도 영향을 주게 된 것입니다. 다만 춘절에 귤을 선물하던 풍습은 여전히 남아, 일본인들은 국외에 거주하는 친지들에게 새해 즈음하여 사츠마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 풍습은 1880년대 북미지역에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당시 일본 이민자들은 본국에서 받은 사츠마를 이웃들과 나눠 먹었는데, 북미인들은 이 씨가 없고 달콤한 시트러스에 푹 빠지게 됐고, 머지않아 일본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사츠마가 북미로 수입되기 시작합니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의 기록에 의하면, 매년 11월이면 일본산 사츠마가 밴쿠버항에 도착해 바로 철도로 수송되었다고 하며, 특별히 오렌지색으로 칠해진 수송열차를 ‘Orange trains’라 불렀다고 적고 있습니다. 북미인들은 이 사츠마 오렌지를 크리스마스 트리에 장식하기 시작했고, 이 풍습은 유럽에도 전해집니다.

2차 대전이 시작되면서 일본으로부터 사츠마 오렌지 수입이 중단되었다가, 종전 직후 맥아더 군정에 의해 수입이 재개됩니다. 그러나 전쟁의 기억 탓에 북미인들은 일본산 수입품의 소비를 꺼렸고, 마케팅의 필요성 때문에 이 온주밀감의 이름은 ‘만다린 오렌지’가 됩니다. 즉 서구인들이 말하는 만다린/크리스마스 오렌지란, 사실 일본에서 수입한 사츠마 품종이며, 이는 온주밀감의 일본 개량품종입니다. 일본 사츠마 나무는 플로리다 등 온대 지역에 이식되어 생산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일본산 사츠마를 최고급으로 치고 있습니다.

* 시트러스 다음이야기 : 탠저린

Written by 김준기

베버리지 아카데미 에디터
"배워서/남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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