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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히또 이야기 1. 역사적 접근과 이해

The Bar BERMU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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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에 대한 국내의 담론은 대부분 레시피나 화려한 스킬 등, 당장 보이는 부분에 편중되어 있다. 다소 어렵더라도 일단 익히고 소화하기기만 하면, 쉽게 대단한 실력가나 트렌드 리더로 보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소수의 실력자들은, 그보다는 좀 더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지식과 경험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지식은 당장 써먹을 데는 없어 보이지만, 평생 자산이 된다.

버뮤다는 비교적 자유분방한 바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늘 변화하며, 다양성을 추구한다. 이러한 개방성은 역설적으로, 기본에 충실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배와 항해하는 배의 차이점은, 내 위치와 목적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여부다. 지금 바라보는 배의 모습은 비슷할지 몰라도, 그 결과는 전혀 다르다.

복잡한 레시피의 바다에서 정확한 좌표를 제공하는 것은 ‘재료’ 뿐이다. 재료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모든 행위는 흉내내기에 그치고 만다. 이 책은 정답을 적은 교과서는 아니다. 그보다는, 그동안 버뮤다가 항해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버뮤다의 대표 메뉴가 된 모히또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재료의 이해가 실제 바의 운영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보인다.

모히또의 해체와 재구성

The BERMUDA itawon
글 김준기, 홍태시 / 감수 베버리지 아카데미 / 제작지원 더 버뮤다(BERMUDA)

 

 

1. 모히또에 대한 역사적 접근과 이해

오늘날 모히또 칵테일의 레시피는 기주인 럼과 설탕, 라임, 민트, 소다수와 얼음으로 구성된다. IBA 스탠다드는 화이트럼 40ml, 신선한 라임주스 30ml, 민트 6닢, 설탕 2티스푼과 소다수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쿠바의 오리지널 레시피는 인터내셔널 레시피와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쿠바의 모히또는 커다란 페퍼민트 잎을 사용하며, 라임이 아닌 레몬(limon)을 쓴다. 음료의 밸런스 포인트도 전혀 달라서, 쿠바의 모히또에서는 기주의 특징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식생이 다르고 문화적 배경에도 차이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음료의 레시피도 달라진다.

오리지널과 스탠다드 레시피 사이의 차이에서, 우리는 한 가지 당연한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다. “레시피는 변화한다.” 그 변화의 배경에는 시대적 흐름에 따른 각 재료의 변화가 있고, 레시피의 변화에 따라 이른바 ‘좋은 맛’이라는 지향점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전문 바텐더라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책이나 인터넷에 활자로 적힌 정답으로부터 나아가, 앞으로의 변화와 진보의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모히또의 기원에 관한 전설 중 하나는 16세기 영국과 스페인의 식민쟁탈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5세기 후반이 되면 카락이나 캐러벨 같은 복합범선이 고안되고, 악마의 바다나 다름 없던 대서양을 비교적 높은 확률로 건널 수 있게 되면서, 이른바 유럽인들의 ‘대항해시대’라는 것이 도래한다. 에스파냐와 포르투칼이 가장 먼저 카리브해와 북아프리카 연안을 넘나들며 식민지를 넓혀갔고, 뒤늦게 뛰어든 영국과 프랑스는 비공식적으로 사략해적을 지원해 선발 제국과의 경쟁적인 식민쟁탈전을 시작하게 된다. 모히또의 전설에 등장하는 드레이크 선장(Francis Drake) 역시 엘리자베스 여왕의 지원을 받아 에스파냐 선단과 식민지를 공격한 사략해적이었다.

그가 1586년 에스파냐 식민지였던 카르타헤냐(Cartagena de Indias, 지금의 콜롬비아)를 공격해 약탈한 즈음의 이야기다. 이들은 아르마다 함대가 도착하기 이틀 전 아바나(쿠바)를 향해 도주하는 데 성공했으나, 열악한 보급탓에 선원들 사이에서 괴혈병과 이질이 돌기 시작한다. 이 때만 해도 유럽인들은 괴혈병의 원인을 모르고 있었다. (2백 년이 지나도록 마찬가지였다. 18세기 화학자 프리슬리는 제임스 쿡 선장에게 괴혈병 치료제라며 탄산수 제조법을 알려준다. 비타민의 개념은 20세기에나 들어와서 확립됐다) 드레이크는 인근 쿠바 해안에 상륙해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치료법을 구하게 된다.

이 때 그의 배에 들어온 것이 ‘Aguardiente de caña’와 라임이었다. 아과르디엔떼는 ‘불 타는 물’이란 뜻으로 고도 증류주를 이르는 말이고, 까냐는 사탕수수를 말한다. 유럽인들을 통해 중남미 지역에 이식된 사탕수수로 원주민들이 기초적인 럼을 만들었던 것이다. 여기에 라임과 같은 초록색의 토착 시트러스의 즙과 사탕수수의 즙, 그리고 식물의 잎을 넣어 약을 제조했다고 전한다. 일종의 민간약초액인 셈인데, 상당히 많은 영문헌들이 이 전설을 모히또의 오랜 기원으로 꼽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발효시킨 사탕수수 즙을 증류한 술에 라임즙과 설탕을 넣어 마시는 브라질의 전통 칵테일 카히피리냐(Caipirinha)
발효시킨 사탕수수 즙을 증류한 술에 라임즙과 설탕을 넣어 마시는 브라질의 전통 칵테일 카히피리냐(Caipirinha)

 

이런 전설은 물론 충분히 흥미롭지만, 모히또의 역사를 특정하기엔 부족하다. 일부 문헌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럼의 존재가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기도 하며, 인류 최초의 칵테일로 ‘El Draque’를 꼽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전해지는 서술만으로는 초록색의 시트러스가 정확히 라임인지도 알 수 없고, 같이 찧어 넣은 잎이 민트인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다. 무엇보다 이렇게 제조한 것은 ‘약’이었으므로, 지금의 음료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수도원에서 증류주에 약초를 담가 활력의 비약(코디얼)을 만들던 것이 바로 이 시기다. 드레이크의 선원들은 괴혈병과 이질을 멈춰 줄 약을 마셨을 뿐이다.

다만 여기서 우리는, 적어도 발효한 사탕수수 즙과 시트러스 즙을 섞어 마시던 풍습이 꽤 오래 됐을 거라는 짐작을 해 볼 수는 있다. 다시 말해, 토착민들은 최소한 16세기부터 사탕수수 즙과 시트러스 즙의 매칭을 즐겨 활용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조합은 브라질의 전통 칵테일인 카히피리냐(Caipirinha)에서도 동일하게 찾아볼 수 있다. 발효시킨 사탕수수 즙을 증류해 만든 까샤사(Cachaça)에 라임즙과 설탕을 넣어 마시는 브라질의 국민 칵테일로, 카니발의 상징과도 같다. 카히피리냐 소비 덕분에, 까샤사는 고도주임에도 불구, 맥주에 이어 브라질에서 두 번째로 많이 소비되는 술이다.

칵테일로서 카히피리냐의 기원은 1918년 상 파울루로 알려져 있으나, 이 칵테일 레시피는 원래 브라질 민간에서 사탕수수 즙에 레몬과 마늘, 꿀 등을 넣어 만들던 감기약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브라질의 까샤사 협회 IBRAC에서도 “민간약에서 마늘과 꿀이 빠지고, 라임의 산미를 줄이기 위해 설탕이 추가되면서 음료로 변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일어난 이유는, 당시 중남미에 유입된 미국의 칵테일 문화 때문이다.

 

1920년, 미국에 금주령이 시행되면서 아메리카 대륙의 음주 문화는 급변하게 된다. 수 많은 바텐더들이 일자리를 찾아 미국을 떠났고, 미국의 칵테일도 이들의 이동경로를 따라 함께 퍼지기 시작한다. 특히 미국과 가까웠던 쿠바는 이 수요를 대거 흡수했다. 이 때부터 아바나/하바나는 현대 칵테일을 잉태하게 됐다. 미국의 칵테일은 열대 과일을 만나 더욱 다양해 졌고, 이국의 식문화와 결합하며 비약적인 발전을 시작한다. 럼과 라임의 매칭을 기본으로 하던 쿠바의 칵테일에, 민트 줄렙(Mint Julep)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미국식 민트 사용법이 결합된 것도 아마 이 즈음이었을 것이다.

헤밍웨이가 쿠바에 정착할 40년대 무렵에는, 수 많은 칵테일들이 각자의 개성을 다듬으며 자신만의 매력과 정체성을 갖춰가고 있었다. 모히또로 유명한 라 보데기타(La Bodeguita del Medio)도 이 시기를 누렸던 바 중 하나다. 라 보데기타는 원래 1942년 Angel Martínez가 자그맣게 시작한 레스토랑 겸 바다. 당시 새로운 칵테일인 ‘Mojito’를 마시기 위해 사람들이 이곳을 주로 찾았다고 한다. 모히또가 앙헬 마르티네즈의 온전한 창작물인지 여부는 논란에 있지만, 수 많은 예술가들이 라 보데기타의 모히또를 사랑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냇 킹 콜, 파블로 네루다 등 당대의 예술인들이 단골로 드나들며 유명세를 탔다.

알려진 이곳의 단골 리스트 중 가장 유명한 예술가는 역시 헤밍웨이다. 그가 정육점 포장지에 친필 사인과 함께 적었다는 “My mojito in La Bodeguita, My daiquiri in El Floridita”는 헤밍웨이와 모히또를 이야기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문구다. 그러나 앙헬 마르티네즈의 증언에 의하면 헤밍웨이는 이 가게 단골이 아니었던 것 같고, 헤밍웨이의 전기를 쓴 Philip Greene 역시 이 문구가 헤밍웨이의 친필이 아닐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특히 평소 경험을 반드시 글로 남기곤 하는 그이기에, 모히또에 관해 적은 공식적인 글이 한 편도 없다는 것도 의문이다.

비밀은 헤밍웨이의 절친이였던 쿠바 언론인 Fernando Campoamor에 있다. 그는 라 보데기타의 흥행에 도움을 줄 방법을 고민하다, 이 같은 대담한 장난을 연출하기에 이른다. 후에 캄포아모르는 헤밍웨이의 임종을 지키면서 “the little joke grew into a big lie”라고 변명을 했고, 헤밍웨이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고 전한다. 실제로 두 사람은 플로리디타, 슬러피조, 클럽 푸에르토 안토니오, 해리스 바 등 당시 아바나의 유명한 바에서 사진을 남겼지만, 헤밍웨이가 보데기타에서 남긴 사진은 찾아볼 수 없다.

 

사실 모히또의 기록이 정확하게 남은 다른 인쇄물이 존재한다. 하바나에 있는 José Abeal의 바인 슬러피 조(Sloppy Joe’s Bar)에서 1933년 출간한 칵테일 메뉴얼 북이 그것이다. 호세 아빌은 1904년 스페인에서 쿠바로 건너와 바텐더 일을 시작하여, 뉴올리언스와 마이애미에서 각 6년씩 바텐더 경력을 쌓고, 금주령이 발효되기 전인 1918년 다시 하바나로 돌아와 슬러피조를 운영했다. 그의 책에 기록된 모히또는 바카디 럼을 기주로 하여, 레몬 반 개와 설탕 1티스푼, 셀처 탄산수, 민트잎을 넣고, 부순 얼음과 함께 하이볼 글라스에 내도록 하고 있다.

 

1933년 출간한 "Sloppy Joe’s Bar Cocktail Recipe Book"에 수록된 모히또 레시피
1933년 출간한 “Sloppy Joe’s Bar Cocktail Recipe Book”에 수록된 모히또 레시피

Written by 김준기

베버리지 아카데미 에디터
"배워서/남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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