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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상식] 아몬드 플레이버

Almond Flav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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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아몬드는 다른 너트들과 전혀 다른 향을 내기도 합니다. 아몬드는 오래 전부터 마라스키노, 아마레또와 같은 농밀한 체리향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구운 아몬드 향만을 기억하고 있다면, 아몬드에서 이런 농밀한 과일향이 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대체 ‘아몬드 향(almond flavor)’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나무에 달린 아몬드. 자두나 체리와 같은 핵과다.
나무에 달린 아몬드. 자두나 체리와 같은 핵과다.

 

아몬드는 정말 견과일까

식물학에서 견과는 과일의 한 종류입니다. 과육 아닌 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인 마른 종자를 결실하면서, 씨앗이 떨어지거나 튀어나가지 않는 식물을 이르는 분류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너트류라고 하는 분류는 식물학적 분류보다 넓어서, 먹을 수 있는 씨앗이나 단단하고 마른 열매들을 모두 말합니다. 이것을 culinary nut라고 합니다.

Culinary nut의 범위는 상당히 넓은 편입니다. 밤이나 헤이즐넛 등은 식물학적으로 견과이지만, 아몬드, 행인, 코코넛, 호두, 피스타치오는 발생학적으로 서로 다른 열매들이 일상에서 너트로 소비되는 경우입니다. 잣이나 은행 같은 겉씨식물의 씨앗, 브라질넛, 마카다미아넛, 땅콩 같은 속씨식물의 씨앗도 너트로 소비합니다.

아몬드는 식물학적으로 살구, 체리, 복숭아 등과 같은 핵과(drupe)입니다. 다만 과육이 거의 발달하지 않아 마른 껍질처럼 벌어지게 되고, 살구씨와 비슷한 모습의 목질핵이 열매처럼 달립니다. 이 목질핵은 발생학적으로 내과피에 해당하며, 단단하게 목질화한 내과피 안쪽에 우리가 알고 있는 종자(아몬드넛)가 숨어 있습니다. 이 종자만 볶아 쓰기 때문에 우리 생활에 속에서 아몬드는 너트(culinary nut)가 됩니다.

견과나 너트류로 분류되는 종자, 과일들은 대부분 식물성 지방을 넉넉히 함유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비슷한 향미(nutty)로 분류되고, 볶았을 때 대부분 비슷한 감각(roasted)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몬드의 종자 역시 지방을 함유하고 있고, 볶은 아몬드넛은 전형적인 로스티드 너트의 구수한 향을 냅니다. 그러나 식물학적으로는 핵과인 아몬드는 한 가지 독특한 성분을 가지고 있어서, 너트와 전혀 다른 향을 낼 수도 있습니다.

 

홈메이드 마라스키노 체리 레시피에 아몬드 익스트랙트가 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www.livinghomegrown.com
홈메이드 마라스키노 체리를 만들 때, 아몬드 익스트랙트를 넣어 체리향을 부각시킨다. www.livinghomegrown.com

 

핵과의 향은 시안화수소 때문

아몬드는 살구, 체리와 같은 핵과이며, 유전적으로 비교적 가깝습니다. 핵과들은 종자를 보호하기 위해 극단적인 두 가지 방어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내과피를 석세포로 강화하여 단단한 목질핵(kernel)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복숭아나 자두 등을 먹을 때 시큼하고 단단한 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종자를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패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목질핵 방어가 깨졌을 때를 대비해 만들어 둔 독성 살충성분입니다.

핵과 종자에서 합성되는 시안화배당체는 체내에서 특정 효소와 결합해 분해되면서 시안화수소(청산)를 발생하는 천연 글리코시드입니다. 서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아몬드를 재배해왔고, 아몬드 씨앗에 독성이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시안화배당체는 아몬드를 뜻하는 그리스어 amygdalin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살구나 매실 등 다른 핵과의 종자에도 아미그달린이 조금씩 들어 있습니다.

이 아미그달린을 합성-분해하면서 생성되는 것이 대표적인 방향족 중 하나인 벤즈알데히드입니다. 아미그달린(C20H27O11N)은 에멀신 효소 등에 의해 가수분해 되어 시안화수소(HCN)와 글루코스(C6H12O6), 그리고 벤즈알데히드(C7H6O)를 생성합니다. 벤즈알데히드(benzaldehyde)는 가장 간단한 방향족 알데하이드 중 하나로, 체리향을 비롯한 핵과의 주요 향미를 구성하는 공통성분이자 중요한 향미 성분입니다. 아미그달린은 수용성이며 열에 약해, 살구씨 추출 오일이나 볶은 행인, 볶은 아몬드에서는 검출되지 않습니다. 벤즈알데히드는 추출오일에 존재하지만 방향족이기 때문에 열을 가하면 휘발됩니다.

아몬드에는 스윗아몬드(Prunus dulcis var. dulcis)와 비터아몬드(Prunus dulcis var. amara) 두 가지 종이 있습니다. 비터아몬드는 스윗아몬드에 비해 아미그달린을 40배가량 더 많이 함유하고 있어 아몬드향이 강하며, 주로 향료를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반면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식용 아몬드는 대부분 스윗아몬드이며, 수확 후 건조 가열하기 때문에 아몬드향이 강하지 않습니다. 아몬드의 너티한 이미지는 이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원래 ‘아몬드향’이라고 하면 아미그달린의 체리향을 의미합니다. 아미그달린을 다량 함유한 비터아몬드는 식용으로 먹을 수 없지만, 오래 전부터 향미 원료로 사용되었습니다. 생 비터아몬드를 알코올에 담가 만든 Bitter almond extract나, 아몬드 목질핵 전체를 압착해 뽑아낸 Kernel oil에서는 짙고 풍부한 체리향이 납니다. 따라서, 볶은 아몬드의 향을 강조하고자 할 때는 ‘Roasted almond flavor’로 표기하여 구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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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향, 먹어도 될까

벤즈알데히드는 매우 핵심적인 향미 성분이므로, 각종 향미 산업에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아미그달린 역시 독성 성분이지만 인체 내에서 어느 정도는 해독할 수 있으므로(구강섭취에 의한 청산의 치사량은 체중 1kg당 0.6~1.5mg), 비터아몬드는 오래 전부터 식품 산업에서 체리향을 낼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유럽 식문화에서 비터아몬드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아몬드 익스트랙트는 마라스키노 체리 가공품에서 체리 향미를 강화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오늘날에는 살구 추출물이나 합성향을 넣어 만들긴 하지만, 아마레또는 대표적인 ‘아몬드향’ 리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지판(marzipan)이나 아마레띠(amaretti) 쿠키에도 아몬드향이 사용됩니다. 오르기트(orgeat) 시럽이나 팔러넘(falernum) 등도 이 아몬드향을 베이스로 만듭니다. 일반적으로 서구 레시피에서 ‘Almond flavor’는 벤즈알데이드의 농후한 체리향을 의미합니다.

다만 언젠가부터 비터아몬드를 식품 첨가물로 사용하지 않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이를 식품 안전 때문으로 해석하는 것은 일견 옳은 면이 있습니다. 오늘날 비터아몬드에 대한 금기는 상당히 널리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터아몬드의 대용품으로 아미그달린 함량이 더 많은 살구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 또한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도 살구잼이나 통조림 가공 후 남은 살구씨를 산업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더욱 저렴한 비용으로 ‘아몬드향’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거나, 비터아몬드에 대한 금기를 우회하기 위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아몬드 판매가 법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닙니다(관련기사). 생아몬드나 행인에 의한 사망사고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1995년 FDA에 의해 비터아몬드의 사용이 금지되었다는 루머는 사실이 아닙니다. 정확하게는 비터아몬드를 경고문 없이 무제한으로 판매할 수 없다는 것이고, 그 성분을 마케팅으로 활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래트릴(Laetrile) 때문입니다. 래트릴은 대체의학에서 주장하는 암치료제입니다. 아미그달린에서 합성한 B17이 암세포만을 선별적으로 공격하며, 직접 섭취하지 않고 정맥주사로 놓으면 청산이 만들어지지 않아 인체에 안전하다는 주장입니다. 이 치료로 유명 배우 스티브 맥퀸이 사망한 바 있습니다.

아몬드향은 보통 알코올 베이스의 익스트랙트로 유통되며, 시안화족 없이 방향족 벤즈알데히드 성분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원료의 출처에 따라 표기를 다르게 하고 있는데, 실제 비터아몬드에서 뽑아낸 것은 pure almond extract로 표기하는 반면, 카시아(시나몬)에서 벤즈알데히드족을 추출해 낸 경우 natural almond extract로 표기합니다. 합성 벤즈알데히드향은 imitation almond extract로 표기합니다.

 

 

아몬드 익스트랙트 만들기

직접 아몬드 익스트랙트를 만드는 블로거나 바텐더들도 있습니다. 아몬드의 향미 성분은 알코올을 용매로 뽑아냅니다. 생아몬드를 보드카에 담가 밀봉한 뒤, 어둡고 서늘한 곳에서 약 2달 정도 보관하면 초보적인 아몬드 익스트랙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고른 침출을 위해 3~5일마다 한 번씩 흔들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상업 아몬드 익스트랙트는 다양한 향미 추출 기술을 활용한 것이므로, 홈메이드 방식으로 충분한 품질을 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맑고 깨끗한 익스트랙트를 만들려면 아몬드 너트의 껍질을 벗겨야 하며, 일반 보드카로도 충분하게 향미를 뽑아내려면 아몬드를 잘게 썰거나 갈아서 접촉면적을 넓혀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한 만들어낸 추출액을 한 번 더 증류한다면 상업 품질에 가깝게 제조가 가능할 것입니다.

사실 국내 시장에서는 전혀 가공되지 않은 비터아몬드를 구하기 쉽지 않아, 홈메이드 아몬드 익스트랙트를 만들어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스윗아몬드는 전술한 바와 같이 아몬드향이 충분하지 않아, 향료로 농축하기에는 효율이 많이 떨어집니다. 만약 우리 향료 산업이 발전한다면, 행인(살구씨)을 활용한 식문화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Written by 김준기

베버리지 아카데미 에디터
"배워서/남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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