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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상식] 비터 Bitter

The Bar BERMUDA

모든 문화적인 결과물에는 어떤 패러다임이 있다. 이것은 마치 끊임없이 생겨나는 미로와 같아서, 언뜻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한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여기에도 패턴이 있고 논리적인 흐름이 있다. 외부인에게는 마냥 새롭기만 한 무엇이지만, 패러다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역사적 맥락에서 매우 당연한 흐름이다.

버뮤다’s 룰 : 하우스메이드

The BERMUDA itawon
글 김준기, 홍태시 / 감수 베버리지 아카데미 / 제작지원 더 버뮤다(BERMUDA)

 

 

ⓒbeverage academy
ⓒbeverage academy

 

 

2. 비터 Bitter

각종 식물성 재료의 성분을 용출하는 기초적인 방법은 압착하여 즙을 내거나, 물에 넣고 달이는 것이다. 이 기술 수준에서 용해력을 좀 더 높이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 말려서 우려내는 차였다. 중세에는 화학과 경제가 발달하면서 새로운 식용 용매를 다루는 법이 개발된다. 증류하여 만든 고순도의 알코올은 매우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용매였을 뿐 아니라, 식용과 보존, 자유로운 희석과 블렌딩이 가능했다.

비터는 이 증류 알코올에 허브나 향신료, 약초 식물을 고농도로 용해시킨 조제품으로, 코디얼과 특제약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된 비터들은 거의 대부분 특제약·엉터리약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실제 약용 효과가 있는 것들은 20세기를 거치며 제약의 영역으로 넘어갔고, 나머지가 소화를 돕는 식후주나 음료용 에센스로 남은 것이다.

오늘날 프렌치 퀴진의 아페리티페 디제스티프Apéritifs et digestifs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식전주 문화는 오래전부터 있던 것이지만, 예를 들어, 안토니오 카파노Antonio Carpano의 베르무뜨Vermouth(1796)는 전통적으로 소화제 역할을 하던 쓴 쑥Wormwood 와인의 변형이고, 조세프 듀보네Joseph Dubonnet의 뀐키나Quinquina(1846)를 비롯한 방 아페리티프Vin apéritif는 당시 강장제Tonic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디제스티프는 식후에 소화를 도울 목적으로 마신 특제약의 흔적이다. 지금이야 디제스티프로 마시는 술이 다양해져서 그 성격을 특제약으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깜빠리Campari나 페르네트Fernet 같은 이탈리안 아마리Amari라던가, 샤르트뢰즈Chartreuse, 예거마이스터Jägermeister 등 허브리큐르들은 모두 비슷한 맥락에서 탄생한 비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각종 식물을 담가 복잡한 향과 쓴 맛을 내는 용액을 넓게 비터Bitter라고 부른다. 향이 진하게 농축되어 있으며, 엽록소나 탄닌 등 쓴맛을 내는 식물 성분이 다량으로 녹아 있어 매우 쓴맛을 낸다. 이 중 일부는 그 자체를 즐기는 허브리큐르가 되었고, 일부는 음료를 가향하고 맛의 밸런스를 잡아 청량감을 높이는 팅쳐Tincture가 됐다.

 

 

ⓒbeverage academy
다양한 한약재와 향신료를 이용해 만든 버뮤다의 팅쳐들. 비터는 팅쳐의 일종이다. ⓒbeverage academy

 

 

이 연결고리는 진Gin이나 압생트Absinthe 같은 허브 스피리츠 제조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진이나 압생트는 발효주를 증류한 것이 아니라 허브리큐르(비터)를 증류한 것이다. 즉, 각종 허브를 증류알코올에 담가Maceration 리큐르를 만들고, 이를 재증류Redistillation하여 쓴맛이 없고 향만 남은 스피리츠를 만든다. 전통 압생트는 이렇게 만든 72%ABV의 증류주에 다시 녹색 허브를 담가 엽록소로 색을 냈다고 전하는데, 지금은 식용색소를 사용한다. 종종 히비스커스 같은 꽃잎으로 다른 색을 내기도 한다.

토닉워터와 비터는 모두 특제약이었지만, 현대 음료로의 접근 방식은 전혀 다르다. 토닉워터는 알칼로이드의 성분을 섭취할 목적으로 친초나 파우더에 물과 설탕을 더해 마신 비터스윗 음료였고, 점점 쓴맛이 최소화했다. 반면 비터는 다양한 약초를 한데 모으다보니 복합적인 향과 특유의 쓴맛이 발생한 경우이며, 이는 충분히 제거할 수 있음에도 필요에 의해 유지한 것이다. 즉, 팅쳐로 사용할 때 비터는 에센스와 별 차이가 없지만, 음료에서 쓴맛의 역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활용하면 더욱 좋다.

비터는 그 자체로 복합 향미와 쓴맛을 동시에 낸다. 당연히 캐주얼 토닉으로 베리에이션하기 좋은 재료이며, 극단적으로는 토닉을 ‘비터에이드’로 개념화 할 수도 있다. 워터에이드에 탄산을 가해 청량감이 늘어난 것처럼, 쓴맛도 마찬가지다. 와인이나 아이스티의 탄닌, 맥주의 홉과 탄산은 모두 청량감미료로 볼 수 있다. 쓴맛은 단맛과 반대편에서 밸런스를 잡게 된다.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음료에서 쓴맛의 의미는 매우 흥미롭다. 자연계에서 쓴맛을 내는 물질은 대부분 독이므로, 진화의 과정에서 인류가 쓴맛을 즐기게 된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화식(火食)을 하면서 쓴맛에 대한 감도가 낮아졌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으나, 아마 쓴맛 자체를 즐기게 된 것은 알칼로이드를 비롯한 식물의 기능성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참고로 쓴맛은 가장 감도가 민감한 맛으로, 미량의 성분만 있어도 감지할 수 있다. 쓴맛의 정도를 나타낼 때는 보통 퀴닌 8마이크로몰(10−6 mol/L) 농도에서 느끼는 쓴맛을 지수1로 기준한다. 퀴닌의 분자량은 324이므로, 이것은 1리터의 물에 약 2.5mg의 퀴닌이 녹아 있을 때 나는 맛이다. 퀴닌염 형태의 분자량도 394정도로 크게 차이나지 않으므로, 미국에서 유통 가능한 키나 음료는 대략 지수3 내외의 쓴맛까지 낼 수 있다는 뜻이다.

 

 

버뮤다 메이드 비터와 수입 비터들 ⓒbeverage academy
버뮤다 메이드 비터와 수입 비터들 ⓒbeverage academy

 

 

[Burmuda’s Comment]

현재 한국에서 토닉의 중세적 의미를 살리기 가장 좋은 재료는 역시 한약재다. 한국에서는 중세 의학이 현대화되지 못하고, 급격하게 유입된 서구 의학에 대비하여 전통의학, 한의학으로 포지셔닝하여 그대로 살아남았다.
전통 의학에서 약재들은 대부분 물에 오래도록 달여낸 탕의 형태였으므로, 이를 알코올에 용해한 비터로 만들어 음료에 사용하는 것은 효과적인 ‘낯설게 하기’가 된다. 많은 토닉이 강장과 소화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니, 건위제(健胃劑)를 매칭하면 본래 의미를 살릴 수 있다.
한의학의 논증과는 별개로, 축적된 자료 덕분에 식물 재료의 체계적인 활용이 매우 편리한 것은 사실이다. 한약재는 상대적으로 구하기가 쉬우므로, 앞으로 음료 산업에서 활용 가치가 높은 편이다.
토닉 장에서 비터 재료로 등장한 고삼, 단삼, 비단풀, 삼백초 등 약재들은 쓴맛 뿐 아니라 각각의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되는 재료들이다. 이런 자료는 프레젠테이션에도 도움이 된다.
비터를 향미 에센스의 의미로 접근한다면 향신료나 과일 껍질 등을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보통 쓴맛이 나서 사용을 권하지 않는 시트러스의 흰색 중과피Mesocarp도 여기서는 좋은 재료가 된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한약재 역시 말린 식물재료라는 면에서, 각종 말린 허브나 향신료와 함께 차음료로 사용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물론 반대로 차 재료들을 비터로 만들어 칵테일로 가져오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Written by 김준기

베버리지 아카데미 에디터
"배워서/남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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