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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상식] 토닉 Tonic

The Bar BERMUDA

모든 문화적인 결과물에는 어떤 패러다임이 있다. 이것은 마치 끊임없이 생겨나는 미로와 같아서, 언뜻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특별한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여기에도 패턴이 있고 논리적인 흐름이 있다. 외부인에게는 마냥 새롭기만 한 무엇이지만, 패러다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역사적 맥락에서 매우 당연한 흐름이다.

버뮤다’s 룰 : 하우스메이드

The BERMUDA itawon
글 김준기, 홍태시 / 감수 베버리지 아카데미 / 제작지원 더 버뮤다(BERMUDA)

 

 

ⓒbeverage academy
ⓒbeverage academy

 

 

3. 토닉 Tonic

오늘날 토닉 워터는 키니네Quinine를 미량 함유한 달콤 쌉쌀한 탄산음료다. 토닉 워터나 진토닉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는 으레, 동인도India를 침탈하던 영국군이 말라리아 치료를 위해 키니네를 물에 타서 진과 섞어 마셨다는 설명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의문이 있다. 이것이 키니네를 함유한 물이라면, 어째서 키니네 워터라고 하지 않고 토닉 워터라고 하게 된 걸까. 말라리아 치료제는 대체 어떻게 음료가 되었을까.

물론 키니네는 지금도 말라리아 치료에 일부 사용된다. 말라리아는 4가지 열원충(Plasmodium spp.)의 기생에 의해 발생하는 열병이다. 열원충의 포자(종자)가 적혈구 속의 헤모글로빈을 먹으며 증식하는 과정에서 고열이 발생한다. 키니네는 열원충 포자와 감염된 적혈구를 사멸시키는 독이다. 그러나 키니네는 적혈구 외 다른 곳에 숨은 말라리아 원충은 죽이지 못하여 흔하게 재발되곤 한다. 또, 오랜 키니네 복용이 다양한 문제를 일으켜, 현대에는 키니네를 인공 합성한 클로로퀸Chloroquine을 비롯해 프리마퀸, 피리메타민 등 다른 약을 주로 사용한다.

키니네는 남미 대륙 원산인 친초나Cinchona 나무(Cinchona officinalis)의 껍질에서 추출한 알칼로이드 성분이다.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 원주민Quechua들이 오래전부터 약으로 쓰던 식물이다. 유럽 최초의 전설은 페루의 총독이었던 루이스 헤로니모Luis Jerónimo de Cabrera 백작의 아내 아나Ana de Osorio의 열병에서 시작된다. 그가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이 나무가 자라는 연못에서 병이 나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일단 연대가 맞지 않아 신빙성이 떨어진다. 백작이 페루의 총독으로 임명(1629)되었을 때 아나는 사망(1599~1625)한 뒤였다. 아마도 두 번째 백작 부인이었던 프란시스카 헨리케Francisca Henríquez de Ribera에 대한 전설로 보이는데, 이 또한 백작 부인의 일기에서 유럽으로 돌아간 기록이 나오지 않아, 정확한 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키니네 성분을 함유한 친초나 나무의 껍질. 식재료로 가공된 것을 해외에서 구할 수는 있으나, 국내에서 식품 제조에 사용할 수 없다. 한편, 나무를 구성하는 섬유질 세포는 복합 탄수화물로, 특별한 효소 없이는 소화할 수 없는 성분이다. 목질 성분은 나쁜 풍미와 촉감을 만들어 내므로, 친초나 바크를 사용해 만든 홈메이드 토닉워터는 품질이 낮다. ⓒbeverage academy
키니네 성분을 함유한 친초나 나무의 껍질. 식재료로 가공된 것을 해외에서 구할 수는 있으나, 국내에서 식품 제조에 사용할 수 없다. 한편, 나무를 구성하는 섬유질 세포는 복합 탄수화물로, 특별한 효소 없이는 소화할 수 없는 성분이다. 목질 성분은 나쁜 풍미와 촉감을 만들어 내므로, 친초나 바크를 사용해 만든 홈메이드 토닉워터는 품질이 낮다. ⓒbeverage academy

 

 

이상의 관련 전설은 모두 예수회 선교사들의 기록에서 비롯된다. 17세기까지만 해도, 남미 교역로는 에스파냐Spain가 독점하고 있었다. 황금 뿐 아니라 수많은 이국식생 재료도 스페인에 의해 유통됐다. 스페인 바스크 귀족 가문의 기사였던 로욜라San Ignacio de Loyola가 조직한 예수회Jesuit의 활동이 전 세계에 닿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시기 스페인의 국력 덕택이었다.

1620~30년 사이, 페루에 파견된 예수회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에게 이 나무에 대해 듣고 기록한다. 이즈음 록사Loxa 지역에 있던 선교사는 실제로 말라리아에 걸렸다가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회복하기도 한다. 친초나 껍질을 Loxa bark라거나, Jesuit’s Bark라고 부르는 이유다. 30년대 예수회 선교사들에게는 말라리아 열병과 친초나 나무 껍질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고 있었다.

예수회 쪽의 기록에 의하면, 1630년 친촌의 새 백작부인이 페루의 리마Lima에 도착하자마자 말라리아에 걸렸고, 친초나 덕분에 살아남은 그는 감사의 의미로 다량의 친초나 껍질을 모아 예수회에 기부하게 된다. 1632년, 백작부인이 직접 이 나무껍질을 가지고 스페인으로 돌아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이때 동행한 것이 예수회 사제였던 베르나베 코보Bernabé Cobo다. 백작부인의 일기가 맞다면, 아마 예수회의 기록은 후원자에 대한 감사의 의미였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말라리아 치료제로 알려진 이 이국적인 약재가 음료로 사용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17세기 유럽인들에게 친초나 바크가 유명해진 가장 큰 이유는 해열 작용 때문이었다. 말라리아 기전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던 때였지만, 이것은 열병의 치료와 예방에 모두 효과가 있는 예수회의 약이었다. 수십 종의 친초나 나무가 Fever tree로 유명해졌고, 세계 각지에서 열병 치료제로 쓰였다.

전세계를 침탈하던 영국군과 동인도회사에서 대량의 친초나 바크를 가져다 쓴 것은 사실이다. 1840년이 되면, 인도에 있던 영국군과 영국인들은 연간 700톤에 가까운 친초나 파우더를 소비한다.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 이를 두고 “The gin and tonic has saved more Englishmen’s lives, and minds, than all the doctors in the Empire”라고 말한 것은 유명하다.

그러나 친초나가 토닉 워터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말라리아 치료제여서는 부족하다. 영국군들이 열병의 예방을 위해 친초나 가루를 물에 타 마셨다는 것만으로는 이것이 이렇게 유명한 음료가 된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아마도 이것은 키나 알칼로이드의 특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터와 팅쳐로 만든 버뮤다 토닉. 현대 토닉 워터는 강장제의 의미를 잃고, 저탄산 저칼로리 에이드 음료가 됐다. 미리 만들어 둔 비터스윗 농축시럽과 소다사이펀, 몇 가지 허브나 약재로 페이턴트 메디신 흉내를 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beverage academy
비터와 팅쳐로 만든 버뮤다 토닉. 현대 토닉 워터는 강장제의 의미를 잃고, 저탄산 저칼로리 에이드 음료가 됐다. 미리 만들어 둔 비터스윗 농축시럽과 소다사이펀, 몇 가지 허브나 약재로 페이턴트 메디신 흉내를 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beverage academy

 

 

토닉은 그리스어 τονικός(tonikós)에서 나온 말로, 원래는 근육의 긴장이나 그 장력, 긴장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다. 17세기 유럽의 기자들은 근육과 신경의 긴장을 같은 것으로 보았고, 이를 편안하게 이완시키는 것을 건강이라고 믿었다. 때문에 Tonic이란 영단어는 기운을 되찾고 회복한다는 의미를 갖게 된다.

아편과 코카인, 담배와 고도주가 약으로 쓰이던 당시 유럽에서, 미세혈관을 이완시키고 중추신경계를 억제하여 진통 효과를 보이는 친초나는 토닉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 신비한 약재는 근막에 직접 작용하는 키나 알칼로이드를 함유하고 있었고, 근육 이완 효과로 사람을 진정시켰다. 실제로 키니네는 ‘야간하체경련Nocturnal leg cramps’, ‘선천적근육긴장증Myotonia congenita’ 같은 근경직증에 효과적이다.

키나 알칼로이드는 부정맥 치료를 위한 강심제로도 쓰였다. 중세 의학에서 심장과 그 활력을 생명력의 근원으로 본 만큼, 토닉 워터와 허브 증류주 코디얼은 17~18세기 유럽인들의 인식에서 당연히 좋은 약이었다. 그러니 이국의 만능약 친초나 바크와 몸에 좋은 탄산수, 심장에 좋은 허브 코디얼이 한데 섞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토닉워터는 한동안 가정에서 만들어 마시는 해열제였고, 각종 약국에서 특제약으로 만들던 약이었다. 따라서 토닉워터를 만드는 수많은 레시피가 존재했을 것이다. 토닉 워터가 상업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인공 탄산수가 한참 유통되던 19세기 중반이다.

상업 토닉 워터는 이전까지의 토닉과는 좀 달랐다. 쓴맛은 줄고, 단맛과 향이 더해졌다. 의 저자 데이비드 스틴David Steen은 최초의 상업 토닉 워터를 에라스무스 본드Erasmus Bond로 본다. 에라스무스는 1858년 라는 특허를 내고, 1870년 진저에일과 생강 추출물로 상업 토닉 워터를 제조했다.

스틴에 의하면 막 상업 토닉 워터가 출시되던 19세기 중반에는 음료사에 있어 중요한 혁신이 일어나는데, 바로 향미재Flavoring material의 발전이다. 초기 자연재료를 이용한 향미재들은 품질이 균일하지 못했고, 종종 보존에 문제가 있어 쉽게 상하기도 했다. 지금은 고전적인 재료라 할 수 있는 생강Ginger, 쐐기풀Nettle, 넛맥Nutmeg, 쓴 박하Horehound, 레몬 오일, 바닐라 향 등이 이 시기 등장했다.

에라스무스의 토닉 워터가 생산될 즈음 영국에서는 W. J. Bush & Co.나 Stevenson and Howell Ltd.과 같은 향료 회사가 설립되어 수용성 향미 원료가 사용 가능했다. 저자인 스틴은 19세기 후반이 되면 고급 향미재의 가격이 1/30 수준으로 떨어지고, 탄산수에서 이산화탄소 용해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참고로, 현대 탄산음료는 초기 인공 탄산수에 비해 평균 약 5배가량 많은 탄산을 함유하고 있다. 탄산의 증가는 설탕의 양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국내 식품법이 키나 알칼로이드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으므로, 원래 의미의 토닉 워터는 만들 수 없다. 다만 비터 재료를 희석한 비터스윗 약탄산음료로 토닉워터를 재정의하면, 홈메이드 토닉워터의 가능성은 무한하게 펼쳐진다.  버뮤다에서는 각종 한약재를 블렌딩하여 홈메이드 비터를 만들고, 여기에 탄산감을 최소한으로 하여 부드러운 음료로 만든다. 이에 대해서는 비터 항목을 참조. ⓒbeverage academy
국내 식품법이 키나 알칼로이드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으므로, 원래 의미의 토닉 워터는 만들 수 없다. 다만 비터 재료를 희석한 비터스윗 약탄산음료로 토닉워터를 재정의하면, 홈메이드 토닉워터의 가능성은 무한하게 펼쳐진다.
버뮤다에서는 각종 한약재를 블렌딩하여 홈메이드 비터를 만들고, 여기에 탄산감을 최소한으로 하여 부드러운 음료로 만든다. 이에 대해서는 비터 항목을 참조. ⓒbeverage academy

 

 

[Burmuda’s Comment]

오늘날 토닉 워터는 100ml 당 10kcal 이하의 당분을 함유한 저칼로리 소프트드링크(Low calorie soft drink)로, 미량의 퀴닌을 함유하고 있다. 시중에는 다양한 상업 토닉이 있으므로, 칵테일 베이스로 쓸 토닉 워터 역시 만들고자 하는 음료에 맞춰 신중하게 고를 필요가 있다.
토닉에 다양한 향미를 더해 캐주얼하게 해석하면, 여전히 단독 음료로써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요즘에는 찾아보기 힘든 비터 스윗 음료로, 홈메이드가 가능할 뿐 아니라, 시그니처로 만들기도 좋다. 특히 토닉 워터를 만들기 위한 핵심이 비터Bitter이며, 다양한 비터를 활용하면 토닉 워터의 업그레이드도 가능하다.
한편, 토닉워터 제품을 다량 사용하는 바에서는 이 홈메이드 방식을 활용해, 개봉한 제품을 업사이클링 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소다 리덕션 항목 참조.

 

전하는 말

* ‘버뮤다’s 룰 : 하우스메이드’ 연재는 2017년 가을 출간을 목표로 작업 중인 ‘더 바 버뮤다 컴플리트 가이드 북’의 2부 내용 중 일부입니다. 베버리지 아카데미와 바 버뮤다가 함께 작업하는 새로운 바 북에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Written by 김준기

베버리지 아카데미 에디터
"배워서/남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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